“영국은 원가나 가격보다 가치를 더 중시
 건설관련 법과 제도를 탓하기 이전에 품질관리시스템의 완성도를 높여야,
 그러자면 적절한 대가가 뒤따라야 한다”

지난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은 건설뿐만 아니라 우리국민 모두에게 자괴심과 실망감을 줬다. 절망감을 넘어 누군가를 책임 지워야 할 사람을 찾는데 일부 언론과 시민이 도를 넘은 추측성 보도와 글을 쏟아 내기도 했다.

내 잘못은 없는데 대통령과 정부, 관료 모두를 싸잡아 비난도 했다. 비난으로 피해자들의 아픈 상처를 치유할 수만 있다만 얼마든지 받겠다는 표정도 읽혀진다. 정치권은 마치 참사로부터 책임이 벗어나 있는 것처럼 정부에 대한 비난 일색이다. 최고 통치권자는 ‘적폐(積弊)’를 조기에 청산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관료와 정치권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게 안전관련 법을 강화시키자는 주장이다. 마치 규제 완화가 참사를 불러온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3200종이 넘는 매뉴얼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 어느 것 하나 작동하지 않았음을 무엇으로 설명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입을 다물고 있다. 미국의 예를 들면서 위기관리 능력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위기관리 역량이 법과 제도에 의해 높은 수준이 유지된다는 확답을 누구도 내놓지 못했다.

필자는 자칫하면 우리 사회가 또 다른 관료 사회를 만들어 낼 우를 범할까 두렵다. 법과 제도 양산으로 참사를 막을 수만 있다면 필자도 동의한다. 필자는 법과 제도만으로는 참사를 막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 옛말에 10명의 순경도 1명의 도둑을 잡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 사회는 좀 냉정해 질 필요가 있다.

1954년 9월에 있었던 태풍으로 인해 5척의 여객선이 동시에 침몰한 참사가 일본 쓰가루해협에서 발생했다. 침몰로 인해 1430명의 익사자가 발생했다. 조류가 심한 쓰가루해협을 왕래하는 연락선으로는 여행객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연락선 대신에 해저를 관통하는 해저철도를 건설해 문제를 해결했다. 일본 세이칸 해저터널이 건설된 배경이다.

2001년 9월에 발생한 미국의 9·11테러는 미국이 자국 내 영토에서 발생한 테러에 대해서 얼마나 취약한지를 노출시켰다. 테러로부터 국토와 국민을 지켜내기 위해 미국은 국토안보부(DHS)를 신설했다. 국가 재난 발생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체제도 구축했다.

그러나 국토안보부는 재난으로부터 국토와 국민을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바로 국민 모두에게 있음을 알리고 전 국민에게 동참을 호소했다. 9·11테러로부터 11년이 지난 2012년도에 국민을 상대로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뭔가를 봤으면 말을 해라(If you see something, Say something)’ 구호다. 국민에게 날카로운 매의 눈을 가져 달라는 주문이다. 거창한 구호나 복잡한 매뉴얼보다 가장 효과적인 게 3억명에 달하는 국민의 눈이라는 점을 공식으로 밝힌 것이다.

한국 건설로 눈을 돌려 보자. 공통으로 지적하는 게 안전 불감증이다. 건설현장의 안전을 보는 시각에도 큰 차이가 있다. 원도급사는 발주자를, 하도급사는 원도급사를, 근로자는 저가낙찰제를 위협 요소로 지목한다. 대립적 관계로 몰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적절한 대가 지급이 먼저인지, 안전관리가 먼저인지를 주장하는 것은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라는 주장과 같이 답이 없다. 4000년전의 함무라비 법전에도 안전사고에 대해서는 극형을 처하라는 조항이 있다. 공사 목적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적정한 대가 지불 조항도 벌칙조항 앞에 들어가 있다.

영국의 건설공사 대가는 기본 철학이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시중 가격보다 비싸게 지불하면 발주자는 약간의 손실을 보겠지만 적게 주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인식이 바탕이다. 영국 건설이 원가(cost)나 가격(price)보다 가치(value)를 더 중시하는 이유다.

대가 지불 책임을 따지기 전에 건설현장의 안전관리 실태를 보자. 세종시에 건설된 모 아파트에 철근이 설계보다 적게 시공한 게 밝혀졌다. 원도급사는 하도급사 책임으로 돌렸다. 물론 하도급사는 원도급사가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주장했다. 공사 감시자로 원도급사, 감리사가 엄연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약책임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문제다.

불량시공이 발견될 경우 쪽집게식으로 확인 가능한 문서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 절차를 따르지 않았음을 확인하지 못하는 것은 시스템의 문제다. 원전건설 현장의 경우 품질확인은 원도급사의 공사책임자, 품질관리책임자, 발주자 등 3중 장치로 운영되고 있다. 작업 단위로 반드시 확인 문서를 남기도록 되어 있다. 감리단을 별도로 두지 않더라도 공사 품질이 지켜지는 이유다. 매뉴얼이나 주장보다 품질관리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공사현장의 품질 및 안전관리시스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법과 제도를 탓하기 전에 시스템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완성도 높은 시스템 가동에는 대가가 따라야 함은 당연하다. 품질보증을 품질관리와 구분하는 것도 절차 준수 여부를 검증하기 위함임을 알 필요가 있다.    /이복남 서울대학교 건설환경종합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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