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서 서울로 발령이 난 공무원 A씨는 서울 동작구의 74㎡ 아파트를 전세가 2억8500만원에 구했다. 이 아파트 시세는 3억7000만원 정도다.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77%다. 턱없이 비싼 전셋값이지만 이마저도 매물이 나온 직후 가계약금부터 넣고 집을 둘러볼 정도로 급하게 얻었다.

결혼을 준비 중인 B(여)씨는 마포구의 80㎡짜리 신규 입주 아파트를 사려다 포기했다. 대출 한도가 늘었다기에 새 집에서 신접 살림을 차려볼까 했지만 최고 5억7500만원까지 오른 집값이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부동산 시장이 뜨긴 뜨고 있나 보다. ‘9·1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한 달간 수도권 아파트 시가 총액이 2조4000억원 늘었다. 또 3.3㎡당 5000만원짜리 일반 분양 아파트가 처음으로 등장했고, 9·1대책 수혜지 양천구 목동의 아파트값이 5000만원 올랐다.

집 가진 사람이나 투자 여력이 있는 수요자는 하루하루가 즐거울 것 같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고 뛰는 전셋값을 따라갈 수 없는 서민은 시름만 깊어간다. 정부 기대와 어긋난 부작용이다.

10월1일 발표된 KB국민은행의 9월 전국 주택 전세가격 상승률은 0.34%다. 전년 동월 0.81%과 비교하면 양호한 수준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는 오판이다. 최근 몇 년간 뛸 대로 뛴 전셋값이 더 올랐기 때문이다. 9월 서울 아파트의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은 2001년 9월(64.6%)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다.

특히 최근의 전세 가격 상승은 거래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빚어진 결과라는 게 더 심각해 보인다. 전셋값 고공행진은 정부 부동산 대책이 ‘실패했다’는 주장의 근거도 된다. 정부는 주택 매매시장이 활성화되면 전세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불행히도 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위의 B씨처럼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려던 사람도 가격이 너무 오르니 추격 매수를 포기한다. 매매 전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전셋값은 더 오를 터다.

양극화도 걱정이다. 부동산 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이 청약시장에만 쏠리고, 가격 상승도 서울 강남과 양천 등 일부 지역에만 국한된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정부가 강남 시장에서 불씨를 지펴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려는 선순환 효과를 기대한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은 효과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무책임한 대책 남발도 시장 불신을 부른다. 매매 전환을 위한 내 집 마련 디딤돌 대출이나 공유형 모기지 등은 거치 기간이 1년밖에 안 돼 원리금 상환 부담이 효과를 반감시킨다. 9·1대책의 골자인 재건축 활성화는 인·허가권을 쥔 서울시가 반대하고, 임대시장 안정을 위해 내놓은 준공공임대주택 활성화 방안도 안전행정부가 취득세 등의 감면에 난색이다.

상황이 이러니 부동산 활성화를 경제 회복의 ‘불쏘시개’로 삼으려던 정부의 계획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어 보인다. 1일 코스피가 2000 아래로 무너졌다. 투자·소비심리도 좀체 나아질 기미가 없다.

다시 부동산으로 돌아가 ‘나 홀로’ 뜨거운 시장, 그것도 청약 등 한 쪽만 불타오르는 온기가 얼마나 지속할지조차 회의적이다. 정부는 “부동산 대책 효과가 짧으면 올해 말, 추가 대책이 계속된다면 현 정부 말까지”라는 시장 관계자의 ‘시한부론’에 주목해야 한다.

또 이미 불거진 부작용에 대해선 신속하게 대처하는 위기관리 능력도 보여줘야 한다. 부동산 시장에 다시 찬바람이 불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경기 회복의 불쏘시개가 가계부채, 깡통전세 문제 등의 ‘엄동설한’으로 돌변해 우리의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   /나기천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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