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법령 중에는 규제의 색깔을 비껴가려고 겉으론 진흥·지원·육성이란 용어를 쓰지만 실제론 규제로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민과 기업 편의를 위해 이런 시도는 없어져야”

지금 정부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추진과 함께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가히 경제만 살린다면,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뭐든 좋다는 다소 단선적인 면도 없지 않아 보이지만, 전 정부의 정책 실패와 국민통합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법령을 접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러한 정책 대부분이 제때에 법령의 제·개정을 통해 뒷받침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지난 정부에서 법제처는 국민불편법령 개폐사업을 추진하는 주관부처로서 전례없이 바쁜 나날을 보낸 적이 있었다. 사업을 추진하면서 의욕이 넘쳤지만 법령을 소관하는 각 부처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본래 법제처는 먼저 나서서 법령을 정비하기보다는 입안된 법령안을 사후적으로 심사하는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중 기억에 남는 사례가 하나 있다. 당시 국민불편법령 개폐사업을 진두지휘하던 기관장이 ‘중소기업창업지원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중소기업들이 창업을 하는데 있어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법을 폐지하라니, 이 무슨 황당한 말인가?

그 사유는 이렇다. 정부 입장에서는 지원을 한다는 취지였지만, 기업들의 입장에서 보면 창업자금 좀 지원받기 위해 요구하는 사항이 너무 많아 사실상 규제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주부부서인 중소기업청으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권고안이었고, 중장기적으로 검토하는 선에서 마무리가 됐다. 그러나 중소기업청이 중소기업들의 창업 지원 방향과 방식을 재고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는 기억된다.

우리 법령들 중에서 이와 유사한 일들이 수없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규제의 색깔을 비껴가기 위해서 법령 명칭을 비롯하여 외관상으로는 진흥, 지원이나 육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각종 요건을 내세워 규제로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작년 11월에 국회에서 개최된 ‘국회CM포럼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건설관리체계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정․관․학계와 업계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건설기술 관련 개선안을 토론하는 자리였다.

정부에서는 건설기술 관리체계를 ‘규제 중심’에서 관련 산업의 ‘진흥과 지원 중심’으로 전환하고자 ‘건설기술관리법’을 ‘건설기술진흥법’으로 전부 개정해 2014년 5월부터 시행하고 있었는데, 시행된 지 6개월도 안 된 시점에서 법제도상의 많은 문제점이 성토됐다.

당연히 토론회에 참석한 100여명의 건설업계 관계자와 기업인들로부터 ‘건설기술진흥법’의 재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건설기술진흥법’이 건설 산업에 약이 되기보다는 규제로 작용해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진출 경험이 있는 어느 기업인은 건설사업관리 사업자가 해외에 나가면 설계업무까지 다 할 수 있는데, 정작 국내법에서는 그걸 막아 놓고 있다는 것이다. 건설사업의 해외 진출을 도와준다고 해놓고 오히려 방해한다는 하소연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법령은 정책을 담는 그릇이다. 입법은 어떤 정책을 담기 위한 그릇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그릇의 크기나 모양은 정책의 성격이나 소비자에 맞춰 달리해야 한다.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처럼, 부리가 뾰족한 두루미에게 넓적한 접시의 국물은 그림의 떡이요, 주둥이가 짧은 여우에게 목이 긴 병에 담긴 생선국 역시 마찬가지다.

일찍이 E.H. Carr는 역사가의 역할을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숨결을 불어 넣어 오늘날 생명력을 갖게 해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입법자로서 법률가에게도 타당할 것이다. 즉, 정책에 생명을 불어 넣어 법령이 현장에서 잘 적용되도록 만들고 수시로 정비하는 것이 입법자와 공무원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한다.

법 명칭만 진흥법․지원법인 짝퉁이 아니라, 현장에서 국민과 기업이 실제로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진짜 진흥법․지원법이 되는 것이다. 법령의 내용과 절차는 정책 집행자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과 기업 편의를 위해 세심하게 배려해야 할 것이고, 입법자와 법령을 집행하는 공무원은 권한이 아닌 서비스와 봉사의무로 무장돼야 한다. 더 이상 진흥이나 지원을 빙자해서 규제 권한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없어야 할 것이다.     /김형수 법제처 경제법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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