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이 올해 두번째 1000만 관객 영화가 됐다. ‘베테랑’은 타락한 재벌3세 조태오를 뒤쫓는 ‘정의의 경찰’ 서도철의 이야기다.

영화 속 조태오는 노조가입을 이유로 일방해고된 운수노동자가 퇴직금을 달라며 본사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자 그를 사무실로 불러 들여 폭행한다. 그리고는 맷값 400만원을 준다.

조태오는 대마를 흡입하고 여성연예인을 농락한다. 외제차를 몰며 명동 한복판에서 질주극을 벌이기도 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재벌가 자제들의 기행을 모은 종합판이다.

이 영화에 관객들은 왜 큰 호응을 보였을까.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합리적인 단죄’가 있기 때문이다. 재벌의 돈질에 맥을 못추는 언론과 경찰, 검찰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서도철은 조태오를 추적한다. 관객들은 여기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잘못한 사람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한국 사회는 이를 이행하는 모습을 보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2200개의 건설사와 관련 건설사·기술자들이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 사면으로 4대강사업, 호남고속철도 사업 등에서 담합했다가 공공공사 입찰참여 제한을 받았던 대기업 건설사들도 무더기로 구제됐다. 또 현재 공정위의 담합조사가 진행 중이거나 조사가 진행될 예정인 건설사도 자진신고하면 공공사업 입찰참여제한을 받지 않는다. 화끈한 사면이다.

담합건설사들이 공공사업 입찰참여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그만큼 사회와 업계에 끼치는 해악이 크기 때문이다. 건설비가 부풀려지면서 국고는 낭비되고, 큰 업체끼리 나눠먹기를 하면서 공정경쟁 질서도 침해됐다. 건설업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물량의 37.9%에 달한다.

담합건설사에 대한 공공사업 입찰참여제한 해제는 솔찍히 예상됐던 일이다. 지난해부터 해당 건설사들은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공공사업 입찰참여제한 해제를 요청했다. 전례는 많았다. 2000년이후 담합건설사에 대한 행정제재가 풀린 것은 벌써 4번째다. ‘담합-적발-사면’이 매 4년에 한 번꼴로 반복됐다.

괘씸한 것은 정부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까지만해도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며 박근혜정부의 ‘법과 원칙’을 유독 강조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시간을 벌기 위한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았다. “공공부문의 물량이 커 건설사들의 부담이 클 것”이라며 사면조치를 서두른 것은 국토부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건설사들이 잘돼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매번 반복되는 ‘사면’이 우리 건설사와 업계를 살리는 진짜 묘책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더구나 수혜는 힘쎈 대기업들에게 집중된다.

만약 담합업체들이 중소형업체였더라도 정부가 사면을 해줬을까. 그래서 이번 사면은 건설업계발 ‘유전무죄’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이런 식으로 해서는 윤리경영을 하는 건강한 기업들이 건설업계에서 뿌리를 내릴 수가 없다.

강자에 대한 특혜가 지속되는 경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선진국일수록 대기업의 시장교란행위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제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일순간에 퇴출된다.

자본주의는 건강한 경쟁에서 발전한다. 국내 대기업들이 열심히 일하고도 그만큼의 존경을 국민들에게 받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제까지 ‘베테랑’같은 영화를 통해서나 대리만족을 해야 할까. 답답할 노릇이다.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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