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송 당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이 퇴임을 한 달여 앞둔 2013년 4월쯤이다. 건설출입기자였던 필자는 강남 세곡동의 한 보금자리주택 단지(정확한 단지 명칭은 기억나지 않는다) 준공을 앞두고 LH가 마련한 현장 방문 행사를 동료 기자들과 함께했다.

기자들이 본 단지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형 건설사가 시공했다. 민간 아파트 못지않게 깔끔한 마감재 처리가 인상적이었고 소규모의 인공폭포를 조성한 단지 조경이 훌륭했다. LH가 지은 아파트라고 하면 통상 떠오르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상당히 달랐다. 게다가 서울 대표 도심인 강남에 10~1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무엇보다 기자들이 놀랐던 건 너무나도 착한 분양가였다. 전용면적 59㎡(25평)가 2억2000만원, 전용면적 84㎡(33평)가 3억4000만원이었다. 입주를 앞두고 행사에 초대된 분양자 가족이 집 안팎을 둘러보고 아주 행복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켜보던 동료 기자들과 “강남에서 아파트를 저렇게 싸게 사면 누구라도 행복하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2년 반이 다 돼 가는 시점에서 강남 보금자리주택이 전 국민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씁쓸함이 유행병처럼 돌고 있다. 이달 중순부터 아파트 전매 제한(6년)이 풀리는 데 전용면적에 상관 없이 가구당 시세가 4억원 정도 올랐다는 뉴스 이후 그렇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2009년 보금자리 1차 시범사업지구로 지정된 서울 강남과 서초지구 내 분양주택이 이달 중순부터 시장에 나온다. 강남지구 A2블록에 터를 잡은 ‘LH푸르지오’(912가구)를 필두로 서초지구 A2블록에 있는 ‘서초힐스’(1082가구)는 12월, 내년 6월과 10월에는 강남지구 A1블록 ‘강남LH1단지’(809가구)와 A7블록 ‘LH강남아이파크’(46가구)가 매물로 나올 예정이다.

강남 보금자리주택의 막대한 시세 차익은 2년 전 현장 방문에서 느꼈듯 당연한 수순이다. 이명박 정부는 치솟는 아파트 가격으로 고통받는 서민을 위해 이른바 ‘반값 아파트’를 도심 인접한 곳에 공급하겠다고 대선 공약으로 약속했다.

성공 모델 제시 차원에서 수요자들의 집중 관심을 받는 강남권 지역을 초기 시범지구로 지정하고 분양 가격을 시세의 50~60% 수준으로 낮췄다.

전매 제한 직전인 현재 분양 당시 2억2000만(전용 59㎡)~3억4000만원(84㎡)이던 LH푸르지오 아파트는 최근 시세가 6억5000만(59㎡)~8억원(84㎡), 분양가가 5억원 이하였던 우면지구, 내곡지구의 전용 84㎡ 역시 현재 8억원 후반대에 이른다.

돈이 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청약 조건의 문턱에 걸리거나 아쉽게 청약에서 떨어진 부지기수 청약자들의 박탈감은 상당하다. 자연스럽게 공공재로 웬만해서는 풀지 않는 개발제한구역을 주택용지로 전환해 싼 분양가로 공급했음에도 당첨자들의 시세 차익 환수 제도가 불비했던 데 대한 전문가들의 비판이 터져 나온다.

수천만원 대의 보증금으로 몇 년간 비좁은 집에서 월세살이를 전전하다 까다로운 청약 조건을 통과해 내 집을 갖게 된 당첨자들을 비난할 의도는 없다. 다만 이들이 분양가와 맞먹거나 웃도는 시세 차익으로 강남에 6억~8억원짜리 아파트를 소유한 중산층 대열에 합류한 행복이 불황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대다수 국민에겐 박탈감으로 반작용하는 게 문제다.

보금자리주택은 이명박 정부 때 21곳에서 사업지구가 선정됐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중단됐다. 강남 보금자리주택에 입성하지 못한 서울 시민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배성재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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