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새로 들어온 후배 기자들의 연령대가 20대 중ㆍ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결혼과 신혼집 마련 계획을 물어보게 된다. 양가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후배들은 신혼집 마련에 여유 있는 표정이지만 아닌 후배들은 부담감에 신산한 표정을 짓는다.

올해 5월 결혼한 절친한 대학 후배는 전세보증금 3억원으로 준공된 지 2년이 안 된 25평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얻었다. 양가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해 전세보증금의 3분의 1은 은행에서 빌렸다.

과연 후배는 전세 재계약이 이뤄지는 2년 뒤에도 아내와 함께 지금 사는 곳에서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깨끗한 집에다 거침 없는 전셋값 상승세를 감안하면 2년 뒤 후배는 보증금에 최소 7000만~8000만원을 더 얹어 주어야 할 것이다. 실제 한 부동산정보업체에 따르면 2013년 입주한 새 아파트의 올해 전세보증금은 평균 35.7% 상승했고 평균 재계약 비용은 7382만원에 달했다.

가슴 아프게도 대한민국에서 2년 만에 7000만원을 모을 수 있는 ‘흙수저’는 없다. 통계청의 ‘2014년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월 평균 960만원이 넘는 소득을 올리는 10분위 가구의 월 흑자액이 320만원이다. 한 푼도 쓰지 않고 2년간 모아야 7680만원이다. 후배에게 남은 길은 두 가지다. 남은 전세보증금 대출에 다시 대출을 더하든가, 아니면 추가 대출 대신 월세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비단 대학 후배만의 고통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세난으로 전국 도처에서 세입자들의 비명이 넘쳐나고 있다. 전세 물량은 눈을 씻고 찾아도 잘 보이지 않고 재계약하려면 은행에서 5000만~1억원의 빚을 내야 한다.

보증금에다 월세를 내는 보증부 월세로 전환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한 푼이라도 모아 목돈을 마련해야 하는 세입자 처지에서는 그렇지 않다. 전세보증금은 이자라는 기회비용을 상실하는 대신 ‘목돈 형성’이라는 역할을 한국 사회에서 해 왔고 20~30대도 그러고 싶을 것이다. 이 효용 덕에 지금의 50대~60대는 경제 성장기에 전세 보증금을 종잣돈 삼아 20평대 아파트를 사고, 다시 30평대 또는 40평대 아파트로 갈아타면서 자산 축적을 이뤘다.

안타깝게도 이 과정을 목격한 20~30대 앞에서 선순환 고리가 끊겼고 이들은 자산 축적 감소의 악순환이라는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치솟은 전세보증금을 감당하지 못해 ‘인(in) 서울’에서 ‘인 수도권’으로 난민처럼 떠밀려나고 있다. ‘인 서울’에 성공해도 문제다.

대출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 상환에 급급할 정도의 전세 대출을 받았거나 아니면 주거의 질이 떨어지는 빌라나 연립주택으로 이사 갔을 세입자들이 상당수다. 어떤 경우든 주거의 질은 하락했고 앞으로도 더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부는 급격한 월세화에 휘둘려 똑 부러지는 해법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체 주택에서 5%도 채 되지 않는 공공임대주택 증가가 해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책 결정 절차와 행정 처리, 시공에 많은 시간이 소요돼 ‘발등의 불’인 세입자들에게 당장 도움이 안 된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21세기 대한민국의 전세난이 마찬가지 꼴이 돼 버렸다. 난파 직전의 대한민국의 세입자를 구원할 구명정이 있긴 한걸까.  /배성재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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