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할 것처럼 한참 시끌벅적했는데, 갑자기 조용해졌다. 정부발 경제정책 얘기다. 대외 경제상황이 좋아진 것도 아니다. 미국은 15~16일께 금리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가계부채는 10월에도 한 달 만에 11조8000억원이 늘면서 한달 증가폭으로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배럴당 30달러대로 유가가 폭락하면서 해운업과 조선업, 건설업의 어려움은 더 커지고 있다. 세계적인 수요감소로 수출 역시 나쁘다.

현안은 첩첩산중인데 정부는 정중동이다.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지켜보는 것이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니 답답한 것이다. 그냥 시간만 까먹고 있다. 정치장관들을 무더기로 기용했을 때 예상됐던 부작용이다. 무더기로 교체되는 시기, 공백은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국회 복귀가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주요 정책현안들이 올스톱됐다. 새 부총리가 오기 전에는 굵직한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 기존 경제팀이 대폭 바뀔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경제부총리설이 나온다.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등은 출마가 확실하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도 출마하겠다며 사의를 밝혔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총선 차출설이 나온다. 마음이 콩밭에 있는 장관이 이리 많은 상태에서 책임있는 결정을 기대하기 힘들다. 한달전 조기교체된 새 장관들은 아직 공부 중이다.

이런 국무위원들을 거느리고는 해운업, 조선업 등에 대한 구조조정, 가계부채 대책, 부동산공급과잉 대책 등을 적극 대응하기란 어렵다. 시급을 요하는 대책들이지만 발표가 줄줄이 미뤄지는 이유다.

당초 소득중심 가계부채 대책은 내년 1월1일 시행될 것으로 봤지만 사실상 내년 3~4월 이후로 미뤄졌다. 이 대책은 대출 때 소득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것으로 대출축소를 의미한다. 돈줄이 죄임을 당하는 부동산 시장은 위축된다. 폭증하는 가계부채가 무섭기는 하지만, 부양책을 통해 어렵사리 살려 놓은 부동산 열기를 식히기도 아깝다. “주택시장은 급등도 없고 급락도 없어야 한다”는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에는 고민이 깊이 녹아 있다.

소득중심 부동산대책을 시행했다 자칫 부동산 불씨가 꺼져버리면 그 비난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금융위도, 국토부도 망설인다. 현 장관이 떠나버리고 다음 장관이 덤터기를 써야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강 장관은 “주택이 과잉공급은 됐지만 당장은 문제가 없는 것 같고,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모니터링한다”는 식의 아리송한 말로 주택업계를 만나고 있다. 주택업계도 국토부의 메시지가 명징하지 않으니 불안한 마음을 갖고 사업을 해나가고 있다.

해운조선업, 건설업 등의 구조조정도 자꾸만 미뤄지면서 ‘골든타임을 놓친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진해운, 현대상선의 합병설 등 다양하게 나오던 해운업계 구조조정은 갑자기 논의가 사라졌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양사의 합병을 통해 시너지를 키워야 된다는 입장이지만 해운당국은 하나의 통합기업은 두 회사가 구축한 영업망을 되레 축소시킬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행여 강제 합병을 시켰다가 부작용에 시달리게 된다면 책임론이 반드시 불거질 텐데 떠나는 장관들이 이를 떠안을리 없다.

이같은 정책결정 부재는 해당 장관들의 직무상 비위로 인해 발생한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데서 문제다. 집권 여당과 친박진영의 총선 승리를 위해 경제장관들을 대거 빼낸 결과이니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꼴이 됐다.

정책결정은 타이밍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실기를 하면 의미가 없다. 가뜩이나 불확실한 경제상황에서 불필요한 불확실성이 더해졌다. 한국경제의 연말이 두려운 이유다.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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