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전쯤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지인과 약속차 왔다 시간이 남아 홍대입구역 3번 출구부터 조성된 경의선숲길을 처음으로 걸어보았다. 폭 20m 정도 되는 경의선숲길은 길 양쪽으로 가로수가 심어져 있었고 잔디밭도 인도 옆으로 펼쳐져 있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여름에는 소규모 분수가 가동돼 더위를 식혀 줬다. 이 곳은 지난해 초만 해도 길목 한가운데를 공사하느라 어수선했던 곳인데 지금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찾는 ‘핫 플레이스’로 변신했다.

경의선숲길 출발지 맞은편에서 150m만 내려가면 또 다른 ‘핫 플레이스’인 지하철 홍대입구역 9번 출구가 나온다. 그 곳에서부터 홍익대 쪽으로 이어지는 지역은 서울에서 사람들이 미어터지는 가장 번화한 상권이다. 두 곳은 모두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인데 안락함과 쾌적함은 경의선숲길 쪽이 훨씬 컸다. 홍익대 9번 출구역에서 홍대로 이어지는 곳의 인파가 더 북적이는 탓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일명 ‘연트럴파크’로 불리는 경의선숲길의 녹지가 도심 번화가에 조성돼 있어 여유와 호젓함을 더 많이 선사해 주고 있어서다. 편안함에 취한 채 곰곰이 생각해 보니 1000만 이상이 사는 서울에 연트럴파크와 같은 녹색 공간이 많이 자리잡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심 속 녹지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경의선숲길은 경의선 폐선 부지 위에서 공원으로 거듭났다. 서울시가 2011년부터 총 3단계로 계획한 경의선숲길은 가좌역부터 용산문화체육센터까지 공원 구간(4.4㎞)과 경의선~공항철도 역사 구간(1.9㎞) 등 총 6.3㎞ 구간으로 조성된다. 마포구 대흥동 대흥로~늘봄2길 일대 760m 규모의 1단계 구간은 산책로, 자전거길과 함께 나무 수만 그루를 심어 도심 휴식공간으로 꾸며졌다.

용산구 효창동~마포구 도화동 구간인 새창고개(0.6㎞)와 마포구 홍대입구역~서대문구 가좌역(홍제천)을 잇는 연남동(1.31㎞) 구간 등 총 길이 3.48㎞의 2단계 구간 사업이 지난해 6월 마무리됐다. 그 전까지 경의선 지상 폐철길 주변은 막무가내로 자란 야생풀과 폐쇄적인 분위기 탓에 우범지역으로 골머리를 썩던 곳이었다.

소음과 분진이 심한 탓에 인근 주거지도 경쟁력이 없어 주거나 상업지역보다 창고 등에 더 적합했지만 숲길 조성 후 일신한 것이다. 내년 5월엔 3단계 구인 신수동, 창전동, 동교동까지 숲길로 완성된다.

녹지가 생기면서 내국인은 물론 인천공항에서 내려 공항철도로도 곧장 올 수 있어 중국인들을 포함한 외국인들의 발길도 잦아지고 있다. 집값이 뛰는 건 당연한 일이고(1억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주변 상권도 전형적인 주말 상권에서 평일에 장사가 잘될 정도로 활기가 넘친다.

연남동은 최근 2~3년 새 커피숍과 맥줏집, 게스트하우스 등 점포와 숙박시설 수십여 곳이 들어섰고 프랜차이즈 대신 개성 있는 점포들이 들어서며 유동인구가 증가하는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

철길로 단절돼 칙칙하고 발길이 꺼려지는 곳에 푸른색을 채색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뉴욕의 센트럴파크처럼 대단히 넓은 공원도 아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사실이 정작 서울에서 적용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집에서 몇 발짝만 걸어 나오면 공원을 거닐 수 있는 시민들이 얼마나 될까.

경의선숲길 인근 주민들의 집값 상승도 부러웠지만 여유로운 삶을 꾸릴 수 있는 환경이 더 부러운 하루였다. /배성재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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