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움이 비우는 것만 못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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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움이 비우는 것만 못한 까닭
  • 김형수
  • 승인 2016.06.07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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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 일을 만들어 양으로 승부하는 것보다 불필요한 일과 기능을 제거해 경쟁력 있는 부문에 집중, 질적인 고도화를 꾀하는 것이 구조조정의 본질이자 창조적 파괴의 단초가 되지 않을까?”

SNS의 시대다. 다양한 컨텐츠를 원 없이 즐길 수 있다. 정보의 생산과 소비가 너무 빨라 제대로 음미할 여유가 없을 정도다. 좋은 정보 고르는 SNS가 따로 나와야 할 판이다. 오늘은 SNS로 동기에게 들은 좋은 글이 있어 소개해 볼까 한다. 바로 칭기즈칸에게 충언을 아끼지 않던 야율초재에 대한 이야기다.

야율초재가 등장하는 사료가 많지 않아 사학자들 사이에서는 그가 어느 수준의 인물인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영웅들을 과대 숭상하는 중국인들의 감성을 감안하면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들은 유비에게 제갈량이 있었다면 칭기즈칸에겐 야율초재가 있다라는 식으로 비유한다. 아무튼 칭기즈칸은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고 오직 능력만 보고 인물을 기용했던 탓에 한갓 피정복민의 젊은 지식인에 지나지 않던 야율초재를 중용했다.

야율초재는 천문, 지리 등 당대 모든 학문을 두루 섭렵한 탁월한 식견으로 칭기즈칸의 총애를 받았다. 이렇듯 세상 만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았던 야율초재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칭기즈칸이 죽고 후계자 오고타이가 야율초재에게 ‘아버지가 남긴 대제국을 어떻게 하면 개혁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라고 답했다. 하나의 이익을 얻는 것이 하나의 해를 제거함만 못하고, 하나의 일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다.

야율초재의 깨달음과 유사한 현대의 예를 찾자면 스티브 잡스의 행적을 들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설립한 애플사에서 쫓겨났다가 애플이 망해갈 즈음에 다시 복귀했다. 잡스가 애플에 복귀한 뒤 제일 먼저 한 일은 새로운 제품을 구상한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제품을 없애는 일이었다. 수십 개에 달하던 애플제품을 전문가용, 일반인용, 최고사양, 적정사양의 단 4가지 상품으로 분류하고 압축했다. 그 결과 죽어가던 애플을 살려냈다. 불필요한 제품과 기능을 하나하나 제거한 결과 망해 가던 애플은 어느덧 시가총액 세계 1위 기업이 되면서 이 시대 혁신의 아이콘이 되었다.

선인들의 깊은 깨달음을 통한 간결하고 큰 가르침은 시공을 초월한 감흥을 준다. 야율초재의 명언은 지금처럼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풍요와 빈곤이 극단으로 치닫는 삶의 일상에서도 훌륭한 교훈이 된다. 보약을 먹는 것보다 해로운 음식을 삼가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보다 그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행복을 원한다면 욕망을 채우기보다 욕심을 없애야 한다. 삶이 허전한 것은 무언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비우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현 시점에서 이러한 교훈을 대입해 본다면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거나 기업이 활로를 찾는 데 충분한 귀감으로 작용하리라 본다. 지방자치단체는 과시성·치적성 행사나 업무를 벌리기보다 불필요하고 주민의 애로가 되는 일을 없애 곳간을 채우고 주민이 안녕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중앙정부도 비워야 하기는 마찬가지다. 규제를 만들어 감시·감독을 하고 간섭을 즐기기보다 민간의 자율을 키우고 기업 활동의 장벽이 되는 것을 없애는 작업에 정치와 행정의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다. 기업 역시 억지 일을 만들어 양으로 승부하는 것보다 불필요한 일과 기능을 제거하면서 경쟁력 있는 부문에 집중하여 질적인 고도화를 꾀하는 것이 구조조정의 본질이자 창조적 파괴의 단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야율초재의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하나의 이익을 얻는 것이 하나의 해를 제거함만 못하고, 하나의 일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다. 비우고 없앤 자리엔 무엇을 채워야 할까. 스트레스의 적인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 채운다면 더더욱 금상첨화가 아닐까. /김형수 법제처 경제법제국장

[김형수] we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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