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한다. 분양가상한제가 사실상 폐지됐지만 정부가 여전히 강력한 분양가 통제 수단을 쥐고 있는지 몰랐음을. 나아가 분양가 억제의 주역(혹은 악역?)인 국토교통부 산하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존재를 나름 ‘부동산 깔때기론자’(대화가 기-승-전-부동산으로 끝나는 사람)라고 자칭했던 필자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난달 분양가 통제 논란으로 부동산업계를 오랜만에 뜨겁게 달궜던 HUG 행보에 대한 관전평이자 자아비판이다.

부동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사태 추이를 주시했을 HUG 논란의 전말은 이렇다.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3단지를 재건축한 ‘디에이치 아너힐즈’ 분양을 앞두고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평균 분양가를 3.3㎡당 4310만원으로 책정해 HUG에 분양보증 승인을 신청했다. 조합 측은 국내 최대 커뮤니티시설과 고급 마감재 등을 무기로 내밀었다.

하지만 고분양가 논란이 일자 국토부가 개입해 제동을 걸었고 분양보증 발급을 독점 취급하는 HUG가 지난달 25일 ‘고분양가로 향후 사업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몇 차례 보증 발급을 반려하자 조합 측은 백기를 들었다. 결국 조합은 두 차례 분양가 조정을 거쳐 ‘주변 시세의 10%를 넘으면 안 된다’는 HUG의 가이드라인까지 준수해 3.3㎡당 4137만원으로 인하한 후 지난 4일 분양보증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앞서 정부는 강남권 고분양가와 투자수요 과열을 막기 위해 분양가 9억원 이상 주택은 HUG 중도금대출 보증을 받을 수 없도록 지침을 마련했고 ‘디에이치 아너힐즈’는 이 규제가 처음 적용된 사업장이다. 현행 주택법은 30가구 이상 공동주택을 선분양할 때는 의무적으로 분양보증에 가입하도록 하고 있는데, HUG는 1993년부터 20년 넘게 분양보증 사업을 독점하고 있다.

‘디에이치 아너힐즈’ 논란으로 번번이 좌초됐던 분양보증 독점 타파가 핫이슈로 떠올랐다. 분양보증 시장 개방이 처음 공론화된 건 2008년 이명박정부 시절. 당시 정부는 ‘제3차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에서 2010년까지 분양보증 시장 독점을 폐지하고, 경쟁체제를 도입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한 차례 연장안까지 발표됐으나, 이후 주택경기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HUG의 독점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민간업체가 이미 건설사들에 대한 신용등급을 매기는 등 부실 기업을 걸러낼 장치를 마련하고 있고 입찰 중도금 하자 등 다른 보증 업무는 개방됐는데 분양보증만 독점을 유지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또한 정부의 인위적인 분양가 인하로 시장에서 받아들여지는 가격 이하에서 분양가가 책정된다면 결국 소수의 분양 당첨자들에게 막대한 시세차익을 누리는 특혜만 제공하는 꼴이라는 비판도 충분히 새겨들을 만하다. 반면 건설사가 자금 조달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집을 짓는 선분양제 하에서 시장 법칙만으로 가동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독점이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수도권 민간택지는 계약 후 6개월이 지나면 분양권을 팔 수 있다. 24일 1순위 청약을 앞둔 ‘디에이치 아너힐즈’는 분양가 인하로 시세 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이 몰려 청약 경쟁률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HUG 개입이 재건축시장 과열을 막은 안전핀일지, 과열을 부추긴 방아쇠일지 궁금해진다.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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