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권 전매기간 제한 연장 등 더 진전된 가계부채 대책이 나왔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드는 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정부가 지난달 25일 △주택 공급량 축소 △중도금 대출 보증 4회서 2회 축소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8ㆍ25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발표했음에도 더 뜨거워지는 부동산시장을 보며 든 생각이다. 정부가 대책 발표 나흘 만에 “부동산 과열 때 또 대책을 내겠다”고 말한 걸 보면 정부 스스로도 미흡했다고 판단한 듯 하다.

정부는 충격요법으로 주택공급을 줄인다고 발표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요자들은 “공급량 축소 전까지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경제적 판단으로 되레 주택시장으로 모여들고 있다. 사실 대책 발표 전 시장의 초미의 관심은 분양권 전매 제한 강화 등 강력한 대출수요 억제책이었다. 그러나 이는 포함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중도금 대출 보증 축소는 의미가 상당히 퇴색됐다. 단기 차익을 노린 투기 수요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횟수 제한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전매 제한이 둔탁한 규제”라고 말했다. 규제 수단으로는 둔탁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 과열 양상에서는 그 둔탁함이 예리한 칼날 역할을 일정 부분 대신할 수도 있다. 현재 부동산시장은 입지가 뛰어난 강남 재건축 열풍을 중심으로 해서 강북, 수도권으로 과열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초기 자금이 적게 들고 수익률이 높은 분양권 전매란 투자법은 누구에게나 솔깃한 유혹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역세권 지하철역이 입주 때쯤 생기고 인근에 대규모 공원이 조성된 수도권의 한 아파트단지 분양을 가정해보자. 전용면적 85㎡에 분양가가 3억5000만원일 경우 투자자는 분양가의 10%인 3500만원만 계약금으로 내면 분양권을 획득한다. 잔금을 치르기 전까지 중도금 50%는 시행사와 약정된 금융권에서 무이자로 빌려준다. 그 사이 아파트 호재가 부각되고 수요가 몰리면 수천만원의 차익을 보고 분양권을 팔아버리면 그뿐이다. 분양권을 양수한 사람이 중도금 대출과 잔금을 다 승계받기 때문이다. 3500만원을 투자해 3500만원을 벌었으니 수익률이 100%에 달한다. 예금 이자가 연 1~2%인 초저금리 상황에서 이처럼 수익률 높은 투자는 찾기 힘들다. 주변에서 이런 방식으로 2000만~3000만원씩 번 지인들을 꽤 봤다.

문제는 분양권 가치가 매우 빠르게 변한다는 점이다. 최고점을 찍었다고 생각되는 순간 투기꾼과 투자자들이 순차적으로 빠져나가면 마지막으로 분양권을 매수한 사람은 폰지 게임의 최후의 피해자라는 운명을 맞는다. 그 피해자의 현실은 수억원을 대출받은 후 전세를 내놓는 것이고 결국 가계부채 총액은 정부의 바람과 달리 올라간다. 분양권시장에 찬바람이 불기 전 강력한 전매제한 억제책이 가계대출 증가를 원천 봉쇄하는 보검인 셈이다.

지금 한국경제는 내수와 수출의 이중고에 처해 있다. 그나마 부동산시장이 경기 부양에 큰역할을 맡고 있어 정부가 분양권 전매 제한 강화에 손을 대지 않은 것으로 짐작된다. 주택 과잉공급과 식어버린 지방의 부동산시장 등은 이미 어두운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126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의 절반 가량은 주택담보대출이다. 

가계부채의 안정적 관리와 수도권 주택시장의 소프트랜딩을 위해 정부가 분양권 전매제한 강화를 플랜B로 진지하게 검토하길 바란다.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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