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산행은 대관령만한 곳이 없다. 눈이 하얗게 덮힌 산을 길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추위는 저 멀리 달아나 있다. 겨울에 찾는 대관령은 언제나 정답이다. 올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수묵화처럼 은은한 대관령 풍경 속으로 훌쩍 떠나보는 건 어떨까.

대관령은 강원도 평창과 강릉의 경계에 솟았다. 한반도의 척추라 불리는, 백두산과 지리산을 잇는 백두대간의 중간쯤 되는 위치다. 동해를 바라고 선 대관령을 기준으로 동쪽을 영동, 서쪽을 영서라 부른다.

대관령을 넘는 고갯길이 대관령 옛길이다. 아흔아홉 굽이 대관령 옛길은 ‘대굴대굴 구르는 고개’라 해서 대굴령이라 불렸다. 걷다가 미끄러져 구르고 또 굴러야 간신히 넘을 수 있는 고개라는 뜻이다.

대관령 옛길은 옛 영동고속도로가 지나던, 지금은 456번 지방도로 바뀐 도로변 반정을 들머리 삼아 걷는다. 주차 공간이 여유롭고 화장실과 전망대가 있어 출발점으로 삼기에 적당하다. 대관령 옛길을 알리는 큼직한 표석을 지나 짧은 나무 계단을 내려서면 본격적인 옛길 걷기가 시작된다.

반정에서 대관령박물관까지는 6km 남짓.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길의 대부분이 완만한 내리막이라 누구나 편하게 걸을 만하다. 완만한 비탈도 그렇지만 넉넉한 품과 급하지 않게 돌아가는 길이 마치 흐르는 물처럼 부드럽다. 정상을 목표로 발끝만 보고 걷는 등산이 직선이라면, 대관령 옛길은 곡선에 비유할 만하다. 물론 아주 간혹, 조금 가파르게 내려선다 싶은 곳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곳엔 어김없이 나무 계단이 설치돼 있고, 다리가 뻐근해질 만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쉼터가 나온다. 또렷이 이어지는 길도 고마운데, 갈림길까지 없으니 길 잃을 염려도 없다. 덕분에 아무리 느긋하게 걸어도 산길을 벗어나는 데 2시간이면 족하다.

옛길로 접어들면 매섭게 얼굴을 때리던 바람이 점점 머리 위로 지나가기 시작한다. 능선과 능선 사이로 길이 움푹 들어앉은 까닭이다. 길 양 옆의, 어른 키를 훌쩍 넘는 언덕이 천연 바람막이 역할을 하는 셈이다. 겨울 트레킹에서 바람처럼 곤혹스러운 것도 없다. 하지만 머리 위로 부는 바람은 거친 숨소리만 위협적으로 토해낼 뿐 산객의 옷 속을 파고들지는 못한다.

주막 터가 있는 상제민원터를 지나면 길은 아예 평지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평탄해진다. 자박자박 밟는 재미가 있던 눈길도 흙길로 바뀐다. 다소 심심할 수 있는 길, 옆에 흐르는 계곡이 졸졸 소리를 내며 말동무가 돼준다.

흙길과 데크 길을 번갈아가며 계곡과 나란히 걷기도 하고, 건너뛰기도 하며 걸음을 옮기다 보면 하제민원터에 닿는다. 실질적인 대관령 옛길은 이곳에서 끝이 난다. 하지만 이곳에서 대관령박물관까지, 혹은 강릉바우길 2구간이 끝나는 보광리 자동차마을까지 내쳐 걸어갈 수도 있다. 하제민원터에서 대관령박물관까지는 1.4km, 보광리 자동차마을까지는 7.1km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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