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정동심곡바다부채길’

무더웠던 여름과 함께 수많은 피서객들이 떠나간 여행지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고요함만이 남겨졌을까. 혼자만의 시간을 기대하며 강원도 강릉 정동심곡바다부채길로 떠났다. 정동심곡바다부채길은 정동진 썬크루즈 주차장과 심곡항 사이를 잇는 약 2.86㎞의 탐방로다. 지형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친 모양과 닮아 정동심곡바다부채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바다를 두고 산책길 전체를 걷는 데 70여분이면 충분하다. 트레킹이라기보다는 여유로운 바닷길 산책에 가깝다.

최근 개방된 해변 산책길… 해안단구·부채바위 등 비경 빼곡 

정동심곡바다부채길은 심곡항에서 출발해 정동진 썬크루즈 주차장에서 마무리하는 코스를 추천한다. 바다에서 시작한 산책이 숲으로 끝나는 독특한 경험 때문이다. 다음 코스로 이동하기에도 정동진 쪽이 편하다. 다만 산책길 마지막에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니 참고하자.

심곡항에 도착하면 바다로 뻗은 방파제 끝에 서 있는 빨간색 등대가 눈에 띈다. 입구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곧 심곡바다전망대다. 파란 하늘이 반갑다.

정동심곡바다부채길은 해안 경비를 위해 민간인 출입을 통제했다가 최근 개방했다. 오랜 시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채 보존된 이 바닷길은 산책로나 탐방로라고만 부르기에는 아쉽다. 정동심곡바다부채길은 2300만년 전 지각변동을 일으킨 해안단구의 비경을 관찰할 수 있는 국내 유일한 길이다.

다음엔 어떤 경치가 기다릴까. 궁금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나무 데크와 철골 구조물로 만들어진 길이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따라 이어졌다. 자칫 카메라나 휴대전화라도 떨어뜨리면 큰일이다. 길 중간에는 얼마나 걸어왔는지 알려주는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다.

정동심곡바다부채길에서는 앞을 보며 걷다 한 번씩 뒤를 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모르고 떠나면 후회했을 경치가 언제 쳐다볼지 기다리며 등 뒤로 내내 따라오기 때문이다. 기묘한 암석과 그 사이 위태롭게 뿌리박고 서 있는 나무도 산책길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길을 걷기 시작한 지 30여분쯤 지나면 부채바위에 닿는다. 부채바위에서는 그냥 지나치지 말고 앞으로 돌아나가 전망대에 꼭 가보자. 벤치에 앉아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풍경을 구경하기에 좋은 장소다. 듬직한 바위를 뒤에 두고 마음속에 바다 풍광과 파도소리를 간직할 수 있다.

다시 20여분 걸으면 투구바위다. 고려시대 강릉에 부임한 강감찬 장군이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를 물리쳤다는 전설이 서린 바위다. 멀리서 보면 장군이 쓰는 투구가 바다를 향해 놓여 있는 모습이다.

산책길이 끝날 때쯤 몽돌해변이 보인다. 파도가 칠 때마다 자갈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소원을 빌며 쌓은 다양한 돌들이 쓰러지지 않고 잘도 서 있다. 몽돌해변을 지나면 길은 숲으로 이어진다. 바다의 비릿함과 숲속 풀 냄새를 함께 맡을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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