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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기술력을 잃어버린 ‘자격증 있는 기술자’

“기술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급변하는 시대에는 채 5년도 힘들다
자격증 유지를 위해 아무리 복습해도
유효기간이 지난 기술은 쓸모가 없다
기술자의 기술력을 재무장해야 한다”

국내건설에 자격증은 보유하고 있으나 기술력을 잃어버렸거나 무시하는 기술자가 보여 안타깝다. 기술자 단체에 가입한 기술자 수만 75만명이 넘는다. 특급기술자와 기술사, 그리고 기사 등 기술관련 자격증을 보유한 기술자 수는 60% 이상이다. 특급기술자와 기술사를 최고기술자라 스스로가 주장한다. 기술자의 역량을 등급이나 자격으로 최고라는 상한선을 규정하는 게 바람직한지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자 등급과 자격증으로 최고 기술력이라는 상한선을 그은 국가는 필자가 알기로는 한국이 유일하다.

지난달 26일 시공 중 교량이 붕괴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TV 자막을 통해 긴급 뉴스로 소식을 접한 필자 머리에 스치고 지나간 것은 ‘현장에 기술자가 없구나. 더 큰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불안감이었다. 사고가 나자 정부와 언론, 기업은 과거 경험을 되풀이하는 광경이 벌어졌다. 안전불감증, 인재, 최저가낙찰, 무리한 공기, 불법하도급 등이 또다시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안전관리비 삭감으로 안전관리자 인원이 적절하게 배치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도급 가격을 무리하게 삭감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그런데 왜 기술력에 대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을까? 기술과 안전사고는 전혀 별개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필자의 경험으로는 건설현장에서 구조물이나 가시설물이 붕괴되는 사고는 기술과 절대 무관할 수 없다. 무관하다면 건설기술을 무시하거나 혹은 경시할 뿐이다. 구조물과 가시설물 사고는 절대 예고 없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고가 난 현장은 20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대규모 건설공사다. 당연히 현장소장은 물론 감리단장도 기술 자격증을 보유했거나 특급기술자 이상이다. 현장에는 책임자급 외에도 많은 건설기술자들이 매일 작업현장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으로 예상한다. 매일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혹은 공법 도입 전에 시공 중 안전성 검증을 하지 않았다면 기술력이 부족했거나 기술을 무시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국내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고율은 인구 만명 기준으로 1.79명이다. 2016년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0.86명이다. 건설현장 안전사고가 교통사고보다 2배 이상 높다. 미국보다 1.8배, 영국보다는 9배나 높다고 한다. 안전사고가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술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기술자가 예산 혹은 공기 부족을 이유로 건설 중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기술 검증을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다면 기술자격증 혹은 등급의 문제가 아니다. 기술자의 기술력에 문제가 있다. 최근의 설문조사도 필자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국내 기술자의 과반수(약 52%)가 소장급 이상의 보직을 선호한다. 보직은 소장급 이상을 기대하면서 교육 수요는 시공기술이 37%로 가장 높다. 그런데 재교육기관을 통해 1번 이상 교육을 받은 사람은 4명 중 3명으로 절대적으로 높다. 그러나 교육을 받은 목적이 실망스럽다. 자격 유지 혹은 승급을 위한 법적으로 의무화된 교육이 전부다. 재교육을 받은 기술자의 52%가 부실한 교육 내용과 과정에 불만이다. 건설기술자 역량 향상을 목적으로 한 의무교육이 예비군교육처럼 되어 버렸다는 한탄도 들린다. 의무교육이 역량 향상보다 자격 유지에 무게 중심이 쏠려 있다.

국제 시장과 경제, 그리고 기술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당연히 인프라와 도시 기반시설도 첨단화되고 있다. 기술을 필요로 하는 목적물은 변하고 있는데 기술자가 가진 기술이 변하지 않았다면 기술력을 잃어버린 기술자가 된다. 기술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20년 전에만 해도 선진기업은 기술의 유효기간을 10년으로 봤다. 지금은 5년으로 보기도 힘들게 됐다. 그 만큼 빠른 속도로 기술이 변하고 있다.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배운 지식만으로 평생을 기술자로 살 수 있었던 시대는 이미 먼 옛날의 추억일 뿐이다. 유효기간이 지난 기술은 아무리 복습해도 아무런 쓸모가 없다. 기술자의 기술력을 재무장시켜야 하는 이유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인정하면서도 건설기술을 자신이 가진 것이 전부인 것처럼 주장하는 시대는 끝났다. 기술을 재무장시키기 위해서는 재교육 학습과정 혁신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진 것을 복습하는 교육에서 시장과 수요자가 원하는 새로운 학습과정으로 바꿔야 한다. 시장은 알고 있지만 수요자는 모를 수 있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과정도 있을 수 있다. 기술력을 갖춘 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수요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전문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기술자의 양심은 기술력이 있을 때와 없을 때에 큰 차이가 있다. 기술력이 높을수록 양심도 커진다. 양심 있는 기술자를 우대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 길이 선진사회로 향하는 길이다. /서울대학교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교수 

이복남 교수  bnlee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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