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였나, 제법 오래된 TV프로그램 중에 명사들의 집에서 명사와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진행자와 명사가 담소를 나눴다. 두루마기를 입은 명사에게는 중후한 멋이 풍겼다. 대화 내용을 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린 눈에 그 장면은 그 자체로 너무 멋졌다. 나도 늙으면 저리 늙어가리라,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눈을 사로 잡은 것은 또 있었다. 집이었다. 이런 집들은 으레 기와로 얹힌 단층 한옥이었다. 좁은 마당에는 이런저런 풀과 나무로 무성했다. 밖에서 들어온 옅은 광선은 두 사람이 앉은 마호가니 탁자를 비췄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것은 명사의 뒷 배경, 서재였다. 이름도 모를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명사들의 집은 저리해야 하는가 보다, 라며 나도 어른이 되면 저런 서재를 하나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지난 주말 아침, 리모콘으로 켠 TV 화면 안에는 한 연예인의 집이 들어가 있었다. 서울 외각에 발품을 팔아 산 집인데, 유명건축가에게 부탁해 지었다고 했다. 멀리 산이 보여 풍광이 좋고, 남향으로 지어 볕이 많이 들어 채광이 좋다고 했다. ‘이 집의 진짜 자랑은 거실’이라는 자막이 뜬다. 거실에는 고가의 홈시어터 장비가 설치돼 있다. 스피커 한 대에 몇백만원 한다는 자막이 뜨자 ‘우와~’라는 감탄사 음향이 흘러나온다. 이 집에 없는 것은 딱 하나다. 서재다. 진행자는 마지막 못을 박는다. “이 집, 많이 비싸겠네요.”

두 장면이 불연 떠오른 것은 오늘 아침 출근길에 한 아파트 분양전단지를 받아들면서다. 걸어서 지하철까지 몇분 거리라는 역세권, 초중고교가 입지한 좋은 학군, 조만간 백화점 등 편의시설이 들어올 예정이라는 홍보문구가 빼곡했다. ‘지금 놓치면 후회할 마지막 투자처’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종합하면 ‘여기는 집값이 오를 곳이니 사라’는 뜻이다. 

시대에 따라 모든 가치는 변한다. 집도 예외는 아니다. 주거 목적이었던 집이 투자대상(혹은 투기대상)으로 바뀐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투자가치는 역세권이나 학군, 지역의 개발가능성이지 집주인의 소양이나 멋과는 상관이 없다. 그러니 내 집 주위에는 장애인특수학교가 들어와도 안 되고, 임대주택이 들어와도 안 된다. 쓰레기소각장이나 시멘트공장 같이 거주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는 않지만 내 집값에는 영향을 줄 수 있다.

명사라고 집욕심에 예외는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관료 상당수도 1가구2주택이었다. 피치 못할 사례도 일부 있지만 투기성이 엿보이는 고위관료도 적지 않았다. 조순 전 부총리처럼 관악구 봉천동 가파른 언덕길의 단독주택에서 꽃과 나무와 책에 파묻혀 30년 가까이를 사는 사회지도층을 찾아보기 힘들다.

며칠 전 지인의 소개로 회계일을 하는 분과 술자리를 가졌다. 3시간 내내 얘기한 것은 집이었다. 대대로 집부자였던 그의 재테크 비법을 듣다보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한 채에 10억, 20억 하는 집들. 나로서는 엄두가 안나는 집이지만 대화는 재밌게 이어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 허할 수 없었다. 쓸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는 추석도 마찬가지. 차례상을 물리면 집이 화젯거리에 오를 것이다. 너네 집은 얼마나 올랐나, 왜 아직 집을 안 샀느냐 혹은 왜 거기를 샀나, 어디를 사면 좋으냐…. 집은 대한민국 성인의 판타지가 된 지 오래다. 이번 귀경길은 또 얼마나 허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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