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말하는 ‘갑질’을 보다 명확하게 정의하면, 우월적 지위에 근거한 불합리한 강압과 착취다. 언론매체를 통해 생생하게 보도되는 갑질은 대부분 개인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사안이다. 그러나 정작 물을 뿌리고 소리를 지르는 것 이상으로 사회에 해악을 미치고 있는 기업 차원의 갑질은 지금도 경제현장에서 소리 없이 자행되고 있다. 

개인의 갑질은 타인의 인격을 파괴하지만 기업의 갑질은 수백명의 생계를 파괴한다. 현재 경제현장에서 자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갑의 횡포가 바로 원청기업의 기술탈취 행위다. 하청기업에게 계약을 무기로 각종 기술자료를 취득하고 이를 유용하는 기업들의 사례가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기술은 기업이 가진 최고의 경쟁력이다. 핵심기술을 눈뜨고 내어준 기업들은 경쟁력을 잠식당하고 결국 존립의 기로에 서게 된다. 

현행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은 이러한 원청기업의 기술 탈취와 유용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법규에 명시된 규정에는 분명한 한계 또한 존재한다. 바로 원-하청 계약 이전의 단계에서 발생하는 기술탈취의 문제다. 

현행 하도급법은 계약 이전에 발생하는 기술탈취에 대한 제재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계약 이전에 발생한 기술탈취 행위에 대해 하도급법에 의한 처벌이 불가능하다. 그 결과 대기업이 계약을 미끼로 중소기업에게 기술자료를 받은 후에 거래가 성립되기 이전에 자료를 유용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기술만 탈취한 채 계약을 맺지 않는 경우까지도 발생하고 있다. 기술을 탈취당하고 계약조차 따내지 못한 중소기업은 그야말로 두 번 뺨을 맞게 되는 셈이다. 법의 불비(不備)로 만들어진 공간은 이처럼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게 된다. 

본 의원은 지난 4월, 하도급 거래가 체결되기 이전단계에서 발생하는 기술탈취 행위에 대한 처벌을 명시한 하도급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하도급 계약을 미끼로 중소기업의 기술만 빼내는 갑의 횡포에 대한 제재가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기술탈취 이외에도 하도급 거래에서 발생하는 갑의 횡포는 무궁무진하다. 특히 건설 현장에서는 이른바 ‘공사비 후려치기’ 관행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관행에 정부와 공공기관도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공 발주사업의 공사비 삭감과 후려치기가 일반화되면서 하도급 피라미드를 따라 손실의 전가가 발생하고 있다는 업계의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공공공사로만 사업을 벌이고 있는 전국 3121개 건설사의 2016년 평균 영업이익률은 -24.6%로 집계됐으며 10곳 중 3곳이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지적을 뒷받침한다.     

건설 분야의 공정질서 확립을 위해 정부가 나서서 표준시장단가의 현실화를 통해 공사비 후려치기를 차단해야 한다. 아울러 국회 차원의 제도적 정비가 절실하다. 공정한 시장질서는 시장의 역동성과 기업가 정신을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전제다. 시장질서가 공정성을 잃으면 수많은 낙오자를 만들 뿐 아니라 기업가 정신 자체를 퇴색시켜 시장경제를 황폐화시킨다. 

한계에 다다른 우리 경제에 역동성을 불어넣기 위해서, 또 수많은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생계를 위해 갑의 횡포는 사라져야 한다. 공정한 시장질서를 위한 제도개혁을 통해 우리나라가 ‘갑질공화국’의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민주평화당 의원(산업통상위, 전북 익산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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