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응천 의원 - 한국형 디스커버리, 누구에게 유‧불리한 제도 아니다
상태바
조응천 의원 - 한국형 디스커버리, 누구에게 유‧불리한 제도 아니다
  • 조응천 국회의원
  • 승인 2019.10.14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실을 은폐해 무기로 삼는 것’을 끝내자는 것이다

지난 9월 ‘한국형 디스커버리’를 도입하는 민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후 법안과 관련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대기업에겐 불리한 제도 아닌가요?” 혹은 “경제적 약자 등 소위 을(乙)에게는 무조건적으로 유리한 제도 아닌가요?”라는 유형의 질문이다.

답을 내리자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는 ‘실체적 진실 발견’을 용이하게 해줄 뿐이다.

사실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대기업에게 유리할 수도, 불리할 수도 있다. 경제적 약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우선 ‘한국형 디스커버리’가 도대체 무엇이며, 왜 필요한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국내기업 간 소송이 왜 미국에서 진행되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흡사 K리그 경기가 미국 축구장에서 열리는 꼴이다. 왜 굳이 우리나라 기업들이 원정경기를 하러 가는 걸까?

그 이유는 영미법계 국가에서 널리 쓰이는 ‘디스커버리(증거개시제도)’ 때문이다. 이는 소송 당사자나 당사자가 될 자가 소송에 관계되는 정보를 상호 간 공개하는 절차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 아주 없는 제도는 아니다. 우리도 미국 디스커버리의 영향을 받아 2002년에 민사소송법의 문서제출명령을 개정한 바 있고 특허법에는 보다 확대된 개념으로 도입되어 있다. 

그럼에도 ‘가습기 살균제 사건’, ‘BMW 차량 화재 사건’ 등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때마다 ‘한국형 디스커버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원도급 업체가 설계변경을 지시하여 추가 공사비가 발생했지만, 대금을 지급하지 않아 하도급 업체가 소송을 제기했다.

이 경우 하도급 업체는 원도급 업체가 설계변경을 지시함으로써 추가 공사비가 발생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핵심 증거는 원도급 업체가 갖고 있어 이를 입증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법원이 문서제출명령을 내리더라도 굳이 자신들의 책임을 증명할 증거를 제출할 이유가 없어 소극적으로 대응한다.

제출을 거부하거나 제대로 내지 않더라도 법원 입장에서는 제재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결국 하도급 업체는 패소하거나 터무니없는 금액의 대금을 받게 된다. 

중소기업 기술침해 사건, 의료소송, 제조물 책임 소송 등 갑-을 관계 사건을 포함한 모든 민사 사건의 상황이 대부분 같다.

우리나라 법체계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보니, 피해를 입고도 아예 소송을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혹은 검찰의 압수수색 등 공권력의 힘을 빌리고자 민사로 풀어야 할 사건을 형사 고소‧고발하는 ‘민사사건의 형사화’도 일어나고 있다. 

이런 증거의 구조적 편재 현상을 해소하고자 디스커버리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현재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 하도급거래법 개정안 등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이고, 중소벤처기업부도 기술 침해행위 조사에 한국형 디스커버리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렇듯 ‘한국형 디스커버리’(이하 증거개시제도)는 개별법 형태로 추진되고 있고, 그 내용도 현행 문서제출명령의 틀에서 일부 확대하는 방식에 그치고 있다. 

특정 유형의 소송에 국한하지 않고 증거개시제도를 적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간단한 방법이 있다. 민사법의 절차법인 ‘민사소송법’에 규정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도 절차법인 연방민사소송규칙에 규정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법원행정처는 ‘사실심 충실화 위원회’를 구성해 증거개시제도 도입을 추진했고, 19대 국회 때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아쉽게도 논의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20대 국회에서는 본의원이 소 제기 전 증거조사 도입과 문서제출명령 실효성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민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한국형 증거개시제도는 독일 등 대륙법계 국가보다는 증거조사 대상을 폭넓게, 미국보다는 좁게 설계했다.

또한 남용적 신청은 기각할 수 있도록 다중 안전장치를 만들고, 증거 위‧변작을 금지하기 위한 증거유지명령도 도입했다.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에 응하지 않는 경우 해당 문서로 상대방이 증명하고자 하는 사실에 관한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강화했다. 

절차는 다음과 같이 이뤄진다. 증거조사 신청 → 상대방에게 신청서 송달 → 법원의 증거개시 결정 → (필요 시) 증거유지명령 → 절차협의기일(각종 자료 요구 및 의사교환) → 증거조사(자료 제출, 감정, 검증 등) → 증거조사 조서 작성 → 화해 및 조정 권고 → 결렬 시 본안 소송 제기 

증거개시제도는 누구에게만 유리하고, 불리한 제도가 결코 아니다. 실체적 진실에 대한 접근성과 절차의 공정성을 높여줄 뿐이다. 또한 소송 제기 전에 상호 증거를 공개함으로써 쟁점을 명확히 하고 이에 따른 자발적 화해로 불필요한 소송을 예방하는 이점도 있다. 

증거개시제도 도입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다. 또한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가 저마다의 법체계에 맞게 운영하고 있다. 해외의 판사, 변호사, 기업들이 우리나라에 증거개시제도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어떻게 민사소송을 진행하는지 어리둥절해 한다고 한다. 고로 국제적 흐름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국민 누구라도 증거수집의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입증의 기회를 평등하게 부여하고,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의 절차법을 빌리러 가는 일이 없도록 법제도를 개선하는 데 앞장서겠다.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토교통위, 경기 남양주시 갑)

[조응천 국회의원] noah@kosca.or.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