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소재 한 현장이 원·하도급 분쟁으로 멈춰 섰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봤다. 현장의 자세한 상황을 살펴봤더니 자재 적재와 관련해 분쟁이 시작된 것으로 파악됐다.

하도급업체는 공사 계약단계에서 현장 한 곳에 자재 적재를 허락받았고, 그렇게 공사를 진행하다 장마로 일부 자재에 피해가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원도급업체로부터 “현장이 번잡하니 자재는 따로 외부에 공간을 마련해 보관하라”는 지시까지 내려왔다.

이에 하도급업체는 우리 귀책으로 인한 피해가 아니고, 당초 약속과 달리 자재 적재 장소도 마련해야 하니 공사비 증액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분쟁은 이 과정에서 발생했다.

원도급 측은 “하도급업체가 쌓아둔 자재 때문에 장마철 현장 피해가 더 커졌지만 여기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자재 보관 장소만 옮기라고 했는데 뭐가 문제냐”는 입장이었고, 하도급업체 측은 “우리로 인한 피해가 아닌 천재지변이고, 약속된 것과 달리 자재 보관과 관련한 비용이 추가로 발생할 일이 생겼으니 이를 보전해 줘야 한다”며 맞서고 있었다.

얼핏 보면 두 주장이 모두 일리 있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하도급업체의 정당한 요구에 원도급업체가 그저 자존심 세우는 상황 정도밖에 안 되는 건이다. 원도급사 입장에서는 별거 아닌 지시에 하도급업체가 반항한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최저가로 현장에 참여하고 있고, 자잿값이 급등한 상황에서 하도급업체 입장에서는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이를 지켜보다 “기사화해서 억울함을 풀면 어떠냐”고 하도급업체에 물었다. 그랬더니 업체 대표는 “이런 일로 끝까지 싸울 거면 건설업을 못 한다. 결국 지고 갈 수밖에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법이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는 현장 모습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건설업계에는 이런 법의 사각지대가 많다. 반드시 해소돼야 할 숙제다. 새 정부가 이런 작은 곳까지 세밀하게 들여봐 주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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