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업체 자생 지원은 정부 의무

규제 명분 밀리면 정부 책임 방기

모처럼 맞은 4일간의‘달콤한’설 연휴를 만끽하고 있던 한가한 오후. 휴대폰에서‘문자 왔어요’라는 신호가 3차례나 울렸다. 국토해양부가 보낸 것으로 연휴 이후첫 출근하는‘28일 아침 하도급 대금지급확인 제도와 관련한 긴급 브리핑을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당초 29일로 예정됐던 브리핑을 하루 앞당긴 것이었다.

많은 기자들이‘얼마나 긴급하길래 연휴에 문자를 보냈나’라는 기대와 의문을 갖고 참석한 브리핑에서 국토부는 원도급 업체가 불법 어음이나 미분양 아파트를 대물로 공사비를 지급하는 행위를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또 원도급 업체와 하도급 업체가 공사대금 지급 및 수령 여부를 발주자에게 통보토록 해 하도급 업체에 대한 지급을미루는 부당행위도 엄히 처벌하겠다고도했다. 건설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원도급 업체들의 횡포가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하도급 업체들에게는 단비와도 같은 제도였다.

대부분의 기자가‘오랜만에 정부가 경제적 약자를 위한 유용한 제도를 만들었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한 기자가“새로운 규제를 만든 것 아니냐”고 물으면서 분위기가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규제는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하도급 대금 지급고질병이 개선될 수 있다”는 말만 반복하는 국토부 담당자에게 다른 기자가“아무리 규제라고 해도‘필요한’규제라면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정부가 규제가 두려워규제를 전혀 만들지 않고 모두 푼다면 과연(정부 자체가) 존재 의미가 있나. 당당하게밝히고 제도가 도입돼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주력하는 것이 옳지 않냐”고따지자 이 당국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하도급 업자가 원도급 업자의 의뢰로 공사를 해주고, 정해진 기간에 당초 약속한대금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원도급자가 절대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지니고 있는 우리나라 건설산업 생산구조상언제나 약자일 수밖에 없는 하도급 업자가원도급 업자에게 이런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기란 기름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 특히 요즘 같은 최악의 건설 침체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돈을 덜 받더라도 공사만 할 수 있다면, 그래서 최소한의 경상비라도 확보할 수 있기만을 고대하는 하도급업자가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원도급 업자에게 어찌 감히 대들 수 있을 것인가.

정부가 공사대금을 받고도 지급을 미루거나 편법 지급하는 원도급자에 대해 최소한의 통보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결코 상행위에 지장을 초래하는 과도한 규제라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강자인 원도급자의 횡포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보는 게 맞다.

최근 한국일보가 하도급 업체에 대한 1박2일 동행 취재를 하면서 파악한 것은 이들의실제 상황이 원도급 업체와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열악하고 어렵다는 것이었다. 일부업체들은 원도급 업체로부터 90일이나 되는어음을 받는가 하면, 또 다른 업체는 미분양아파트를 대물로 강제로 떠 안거나 아예 공사대금을 떼이는 경우도 비일비재 했다.

현 정부의 최대 관심은 경제 활성화를통한 일자리 창출이다. 건설 분야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곳은 다름 아닌 하도급현장이다. 중소 하도급 업체들이 튼실하게자생할 수 있도록 간접 지원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규제 아닌 규제’라는 명분에 떠밀려 우리 사회의 풀뿌리 서민들의 최소한의 권익도 지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부의 책임 방기, 그 이상도이하도 아니다. 차제에 전문건설업계도 홍보 및 대외 로비 기능을 한층 더 강화, 무엇이 규제이고 무엇이 규제가 아닌지를 관련당국과 입법관계자에게 충분히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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