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언론재벌인 영국 귀족과 결혼 급환으로 숨진 남편유언 따라 무주 백련사에 유해안장한 뒤 재단세워 소록도병원 등 지원 ‘한국이미지징검다리상’수상

지난 1월13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 이사장 최정화)이 주최한 ‘CICI Korea 2010’에서는 눈에 띄는 수상자가 있었다. 재일동포로 영국귀족이 된 레이디 로더미어 자작부인(60·한국명 이정선)이 ‘한국이미지징검다리상’을 받은 것이다. 행사에는 정운찬 국무총리를 비롯하여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 마틴 유든 주한 영국대사, 테드 리프만 주한  캐나다대사, 이 참 한국관광공사 사장, 마에스트로 정명훈씨, 영화감독 임권택씨, 배우 안성기 박중훈 강수연씨 등 80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이미지징검다리상을 받은 레이디 로더미어 자작부인(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정운찬 국무총리 내외 등 내빈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제공)


로더미어 자작부인의 인생은 한 편의 영화처럼 드라마틱하다. 1950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20대 후반인 1979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뉴욕에 진출했다. 뉴욕갤러리에서 일하면서 손이 유난히 예뻐 포드 모델 에이전시에 발탁돼 크리스찬디올, 레블론 등 유명 화장품의 손 모델로 활동했다. 에이전시측은 손 하나에 100만 달러짜리 보험에 들어줄 정도였다. 그는 이 무렵 동물병원 후원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행사장에서 영국의 귀족 비어 함스워스 로더미어 자작(1924~1998)을 우연히, 그러나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을 하게 됐다.   

로더미어 자작은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메일>의 사주로 로이터통신 회장도 역임한 대표적인 언론 재벌이었다. 두 사람은 1993년 결혼했다. 남편은 부인의 모국인 한국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빈대떡, 멸치볶음을 좋아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던 중 1998년 로더미어 자작부인에게 슬픈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모친이 별세한지 얼마 안돼 자신을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하던 남편마저 심장마비로 타계한 것이다. 로더미어 자작은  “내 유해의 절반은 집 앞마당에, 나머지는 아내의 고향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장모의 장례식이 열린 전북 무주의 백련사에서 덕유산의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로더미어 자작부인은 백련사 일주문 앞쪽 모친의 부도(浮屠) 옆에 남편의 부도를 세우고 대웅전 법당 한 편에는 영정과 위패를 모셨다.

비탄에 빠진 로더미어 자작부인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봉사와 자선사업이었다. 케냐, 동티모르 등지에서 땀 흘리면서 제2의 인생을 연 것이다. 한국에도 눈을 돌려 전남 고흥에 있는 한센인 시설 국립소록도병원의 후원자가 되어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오는 5월 5일에는 자신이 후원회장인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초청, 소록도 우촌복지관에서 한센인들을 위로하는 연주회를 개최한다. 연주곡목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이다. 2009년 7월 아시아 지역의 자선활동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디 R 재단을 영국에 설립한 이후 첫 번째 자선 프로젝트 행사이다. 레이디 R 재단은 한국과 영국뿐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 자선의 손길을 내밀 계획이다.

이날 ‘CICI Korea 2010’행사에서 한국이미지디딤돌상은 ‘'부산국제영화제’에 돌아갔다. 2009년까지 14번째 영화제를 성공적으로 개최, 아시아 최고 권위의 영화축제로 발전시킨 점이 높이 평가된 것이다. 한국이미지조약돌상을 수상한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수상소감대신 정명훈 예술감독의 지휘로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줬다. 로더미어 자작부인은 “큰 상을 받는 이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소록도에 있는 분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사무칩니다”며 “앞으로도 꾸준히 소록도를 찾아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받은 상 이름처럼 한센인들을 비롯한 어려운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가져다주는 징검다리가 되겠다는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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