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공소 거리에 문화예술의 향기가 흐른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3가를 중심으로 철공(鐵工)의 에너지와 예술가의 창작열정이 어우러지는 도심 속 이색마을 ‘문래예술촌’이 바로 그곳이다.

      서울 문래동에 조성된 ‘문래예술촌’
      시각ㆍ공연예술가 등 다양한 작가들
      7년전부터 70여 작업실에 160여명
      인근엔 서울시 ‘문화예술공장’생겨

서울 문래동은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문익점이 돌아올 때 목화씨를 붓대 속에 넣어가지고 와서 목화를 퍼뜨린데서 동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또 솜을 자아서 실을 만드는 틀인 물레를 처음 고안한 고려 말 문래(文來)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인지 일제강점기에는 문래동에 방적공장이 많았으며, 1960년대에는 800개가 넘는 철재상가와 중소 공장들이 밀집해 국내 최대의 철강재 판매1번지였다. 그러나 1980년대를 전후해서 도심재개발과 공장이전 정책에 따라 철재상가들이 수도권 밖으로 이전하고 현재는 소규모 철공소들만이 남아있다. 임대료가 저렴한 빈 공간이 많아지자 홍대앞, 대학로 등에 있던 예술가들이 2003년부터 모여들기 시작했다.

◇일러스트 작가 이소주씨가 자신의 작업실에서 문래예술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재 75개 작업공간에서 160여 명이 혼자 또는 2~3명씩 둥지를 틀고 활동하고 있다. 회화, 조각, 디자인, 설치, 일러스트, 사진, 영상, 서예, 영화, 패션, 애니메이션 등 시각예술 장르를 비롯해 춤, 마임, 거리극, 전통음악 등 공연예술가와 문화기획, 시나리오, 비평,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문화활동가들이 작업하고 있다. 처음에는 눈인사만 나누던 작가들이 최근에는 정기적인 모임도 갖고 예술프로젝트를 함께 준비하는 등 소통이 활발하다.

2007년 10월 ‘물레아트페스티벌’을 열어 문학, 연극, 무용, 음악, 영화, 비주얼 아트 등을 선보였다. 한국 일본 프랑스 작가들이 참여하는 이 페스티벌은 오는 10월 4회째 공연을 한다. 같은 해 12월에는 ‘문래예술공단’도 결성했으며 공동블로그를 통해 친목을 도모하면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러스트 작가 이소주씨(35)는 5년 전 이곳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최근 철공소 골목 안에 있는 갤러리 겸 카페 ‘솜씨ㆍCotton Seed’에서 필자와 만난 이씨는 “문래예술촌의 작가들은 예술활동에 대한 정보공유와 장르간 협업, 국내외 예술인 교류 등을 통해 창작활동의 활성화와 공동체의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고 말했다.

이씨 작업실 옆에는 비눗방울 마술로 유명한 일본인 마임이스트 오쿠다 마사시씨(52)의 스튜디오가 있다. 국내 최초의 거리극 전문단체인 ‘경계없는예술센터’는 상명대 연극학과 이화원ㆍ윤기훈교수가 공동대표로 장르와 극장, 국경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양식의 공연예술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문래예술촌 작가들은 특정한 주제를 정하고 전문가를 초청, 강연을 듣고 대화를 나누는 월례 포럼도 개최한다. 매월 셋째 주 저녁에는 반상회를 열어 각자 준비한 음식 등을 나누며 정보교환을 한다.

지난 4월에는 자율부엌을 설치해서 매주 토요일 점심과 저녁식사 시간대에 시범운영했다. 1톤짜리 트럭과 짐 운반용 4종류의 자전거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철공소 주인들의 이해와 협조도 잘 되고 있다. 철공작업장인 세원정밀은 설치미술 작업에 필요한 산소용접기, PVC 용접기, 에어 컴프레서 등을 무상으로 빌려주고 있다. 문래예술촌에는 당장은 아니지만 장래에 닥칠 고충도 있다. 작업실이 산재해 있는 일대가 준공업지역으로 재개발사업이 검토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반가운 일도 있었다. 서울시가 지난 1월 문래예술촌에서 멀지 않은 문래동 1가에 ‘문화예술공장’을 설립한 것이다. 문래예술촌 작가를 비롯한 잠재력있는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세운 지하1층 지상4층 규모의 아트팩토리에는 공동작업실, 다목적 발표장, 전시실, 녹음실, 세미나실, 예술가 호스틸 등의 공간을 갖췄다. 삭막한 철공소 동네의 ‘문래예술촌’작가들은 오늘도 그들의 꿈과 희망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설희관 <언론인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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