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선 반값 말하지만 목돈 분양금은 서민에 큰 부담

 SH공사의 값싼 장기전세 ‘시프트’가 되레 더 현실적

무주택자인 홍길동이 있다. 변변한 직장이 없는 그는 닥치는 대로 일하며 서울에서 전세로 살아가는 우리네 서민이다. 그는 부인과 자녀 2명을 둔 가장이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 집이 없다. 청약저축에 가입해 매달 돈을 붓고 있다.

그러나 내 집 마련의 꿈은 점점 멀어져 가는 것 같아 시름이 깊다. 저축을 하는데도 돈이 모이는 속도보다 집값이 오르는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홍길동씨는 거북이와 토끼의 경쟁 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 이러다가 영영 보금자리 마련은 꿈도 꾸지 못하고 전셋집에서 월셋집으로 전전하는 신세가 될까 겁난다.

그러던 그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며 집 없는 서민들이 집 걱정 하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말에 잔뜩 기대가 부풀었다. 이젠 정말 발 편히 쭉 뻗고 누울 수 있는 곳이 생기겠구나하는 설렘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정말로 정부가 거의 반값에 아파트를 준다는 소식이 들렸다. 도심 근교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풀어 주변 시세의 70∼80% 수준에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홍길동씨는 실망을 하고 말았다. 입을 것 안 입고 외식도 거의 하지 않고 돈을 모았는데도 보금자리주택은 너무나 높은 벽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민주택기금으로 보조를 해준다 하더라도 몇억 원이 넘는 분양금을 낼 형편도 안 돼 보금자리주택 사전예약에 신청조차 하지 못했다.

보금자리주택에 당첨되면 앉아서 몇천만 원에서 몇억 원은 쉽게 불로소득을 올릴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정부가 집은 소유가 아닌 주거의 목적으로 봐야한다고 해놓고 집을 사라고 내모는 이유가 뭔지 홍길동씨는 당최 알 수 없었다. 도대체 정부가 집 없는 서민을 대상으로 ‘집장사’하는 것과 다름이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홍길동씨가 바라는 것은 내 집을 사는 것이 아니라 쫓겨날 염려 없이 살 수 있는 집만 있으면 된다. 참 소박한 꿈이다. 정부는 홍길동씨의 한 맺힌 외침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아마 모를게다. 그러니 보금자리주택을 지어서 서민들에게 팔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 아닐까.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고 했던가. 홍길동씨는 보금자리주택을 두 번 다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정부에 배신감마저 느꼈다.

홍씨는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우연히 전철 안에서 인기 만화 주인공 ‘무대리’가 나온 광고를 봤다. 싼 전셋값에 20년간 살 수 있다는 서울시 산하 SH공사의 시프트(SHift:장기전세주택) 광고였다. 눈이 번뜩 뜨인 홍씨는 SH공사에 문의를 했다.

소득이 낮은 무주택자에게 주변 전세 시세의 60~80% 정도 수준에 20년 장기로 전세를 준다는 SH공사 관계자의 말을 듣고 ‘이거다’ 싶었다. 이리저리 이사할 필요가 없어 무엇보다 집식구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시프트가 들어서는 지역도 마음에 쏙 들었다.

서울시내 뉴타운은 물론 재건축 아파트에도 시프트 물량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놀랐다. 물론 재건축 시프트는 다소 가격이 비싸 엄두를 낼 수도 없지만 뉴타운 시프트는 신청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9월에 송파․강동구 등 서울 9곳에서 시프트 1962가구가 공급된다는 소식이다. 재건축 아파트 물량은 62가구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SH공사가 직접 짓는다. 싼 값에 전셋집을 내 집처럼 20년간 살 수 있는 시프트. 홍길동에게는 그야말로 시프트가 낙원이다.

보금자리주택을 폄하하고 시프트를 찬양(?)하려는 게 아니다. 서민을 위한 주거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지를 고민해보자는 뜻에서 가상의 글을 적어 봤다. 정책 당국자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김문권 한국경제매거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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