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사람들의 약속시간 관념이 아주 좋아졌다고 하는데, 김 작가가 보기엔 천만의 말씀이다. 더더욱 안 지킨다. 시간에 임박해서 휴대전화로 핑계 한 방이면 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골퍼들의 무서운 인식 하나가 있다. 골프약속은 남북전쟁 발발 아니, 하늘이 두 쪽 나도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신념이 강하다. 오죽했으면 ‘본인사망’말고는 골프약속 불참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할까? 마누라나 부모가 세상을 떠났어도 라운드는 마치고 상주와 함께 문상을 가야 한단다. 이쯤 되면 골프는 고약하고 없는 것이 되고 마는데…

골프를 ‘국민운동’으로 아는 미국인들도 골프약속은 아주 엄격하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상품 신부가 골프장 페어웨이로 질주해 들어와 샷을 하려던 골퍼에게 소리를 지른다. ‘야! 우리 오늘 결혼식이잖아! 뭐해?!’ 그 녀석 참 멋쩍게 대답한다. ‘오늘 비가 오면 결혼하고 아님 친구들이랑 골프약속 있다고 했잖아!’ 기가 찬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골프약속은 지고지순하고 신성불가침인가. 국법에 우선한가. 어기면 20년 정도 형벌이라도 언도받는지! 나도 10여 년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내와 미국연수가 잡혀있을 때, 라이벌 친구 녀석이 갑자기 맞짱매치를 제의해 왔을 때, 출국을 1주일 연기한 적이 있었다. “내가 좋으냐, 골프가 좋으냐?”는 아내의 추궁에 한참을 시달렸다.

공 때리기 20년을 넘기고 있는 김 작가의 골프사랑은 만장굴처럼 더욱 깊어가고 있다. 그러나 골프약속이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믿지는 않게 됐다.
고성능컴퓨터 일기예보의 비올 확률 95%에 현재 억수같이 퍼붓고 있는데도 깝쭉대는 놈은 ‘내가 라운드를 하면 오던 비도 멈춘다.’고 한다.

오늘 애 입학시험이라고 말해도 ‘당신이 직접 보냐?’고 한다. 몸이 좀 아프다면, ‘운동부족에서 온 것’이니까 더 해야 한단다. 골겔지수(전체수입에서 골프비용이 차지하는 비율)가 악화되어 있는 눈치를 보이면, ‘해서 따면 되지 않느냐’고 하고. 장인장모가 온다면 사위가 좀 바쁜 척 해야만 ‘아, 내 딸년 호강시키려 이 놈 사업이 바쁘구나!’라고 생각한다고 그러고.

그동안 당신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골프약속을 정확히 지켰다. 시간에 늦을세라 카레이싱 하다가 교통위반 딱지도 수없이 떼었고, 골프약속은 지킨 대신 다른 일이 어긋나 후유증이 심한 경우도 있었다.

자, 하고 싶은 말이다. 때로는 골프약속도 어기자. 다만, 충분한 양해를 구하고 나중에 식사라도 대접하며 다시 사과하면 된다. 약속 지키려다가 물에 빠져 죽은 우직한 ‘미생의 우’를 범치 말라는 말이다. 
이유 있는 ‘약속깨기’는 무죄이다! /김재화 골프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