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칼럼 - 삶의 뜨락에서

김일순 ‘한국골든에이지포럼’ 회장
환자존중 ‘사전의료의향서’ 캠페인
금연운동협의회 22년간이나 이끌어
노인기준연령 65세 상향조정도 건의

지난 8일 오후 서울 잠실의 찻집에서 만난 연세대의대 명예교수 김일순 박사(74)는 자리에 앉으면서 옆구리의 만보계를 꺼내보았다. 한참을 걸어온 모양이었다. 그날 필자와의 약속이 다섯 번째고 저녁에 또 한 사람 만난다고 했다. 자신감이 넘쳤고 목소리는 힘찼다. 그야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보였다.

김 박사는 2002년 연세대의료원장을 끝으로 은퇴하기까지 연세대의대학장과 보건대학원장, 대한예방의학협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국민건강증진에 기여한 ‘예방의학의 대부’이다. 특히 1988년 설립한 한국금연운동협의회를 22년이나 이끌다가 지난해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뒤에도 금연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연세대의료원장이던 1993년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환자권리장전’을 선포했다.

2009년 10월에는 ‘한국골든에이지포럼(Korea Golden Age Forum)’을 결성, 공동대표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포럼은 고령자 문제를 스스로 풀자며 의료·언론·문화·법조계 등에서 활동한 70대 전문가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사단법인이다. 이성낙 전 가천의대총장, 김용문 전 보건복지부 차관, 이동준 성균관대 명예교수, 김의숙 연세대 명예교수 등이 공동대표이며 이광영 전 전북대 초빙교수, 전세일 차의과학 대체의학 대학원장 등이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포럼은 설립취지문에서 “우리나라가 10년 후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만큼 고령자들의 위상과 역할 재정립, 부정적인 이미지 개선, 생산적인 사회역할 모색, 생활의 불편을 완화해주는 제품개발, 정부의 고령자정책의 방향 개선 유도 등을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다.

포럼은 관계기관에 노인 기준연령을 상향 조정하자는 건의문을 보냈다. 노인 기준연령인 65세는 국민의 평균수명이 50대 중반밖에 되지 않던 1950년대 인구학자들이 정한 것이기 때문에 고령화 사회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이 기준에 따라 전체 인구의 11%인 550만 명을 노인으로 분류하고 있다. 포럼은 최근 생명의 연장 및 특정치료여부에 대해 환자 본인의 의사를 서면으로 미리 받아두는 공적문서인 ‘사전의료의향서(事前醫療意向書)’작성운동을 펼쳐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포럼은 또 ‘고령자 걷기 지침서’도 내놓았다.

건강상태가 보통이면 하루 보행 수를 60대는 5000~6500보, 70대는 4000~5500보, 80대는 2500~4000보로 하고, 1분당 걷는 속도는 60대 110~120보, 70대 100~110보, 80대 90~100보로 제시했다. 김 박사는 주중에는 골든에이지포럼과 임상실험관련 회사인 (주)헬스로드의 CEO업무를 보고 주말에는 부인 김동연 씨(71)와 제주도의 집에서 보낸다. 부부는 1985년 제주시 영평동에 평당 1만 원짜리 땅 1천여 평을 사서 거처를 마련하고 과실나무를 심었다.

사과, 배, 비파, 감, 매실, 대추, 앵두, 블루베리 등이 철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김 박사는 “미국 시카고대 벤저민 콘웰 교수의 조사결과처럼 고령자야말로 가장 스트레스가 적고, 수입이나 명예를 위한 경쟁부담이 덜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학교와 학원을 쳇바퀴 돌 듯 하는 어린이, 취업난의 젊은이들, 퇴출과 은퇴 불안감에 시달리는 장년층보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고령자가 행복의 조건인 독립성과 자율성이 높아 그만큼 더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건강과 돈 등은 행복의 다음 단계라는 것이다. 2007년 퓰리처상 수상자인 코맥 매카시의 소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에는 “나이가 들면 자기가 행복해지고 싶은 만큼 행복한 법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노인이란 말을 안 쓰는 김 박사는 고령자와 더불어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설희관 <언론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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