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잘·공

 
오래전 어떤 TV드라마에서 들었던 특별한 대사 몇 마디. 좋은 집안에서 공부도 잘하고 곱게 자란 처녀가 사창가에 몸을 담고 있는 참담한 생활을 하게 된 상황. 취재를 간 기자가 그녀에게 물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죠?”,  “기자님, 비 맞아보셨나요?”, “비 안 맞아 본 사람이 있겠어요?”, “처음부터 비 맞으려 작정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저두 마찬가지였구요.”, “비 맞은 거 하고… 무슨 얘기?”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여자는 말했다. “처음엔 비를 피하려 하죠. 그러나 조금 맞다보면 이내 비에 몸을 맡겨버린다니까요.”

사람의 자포자기란 찰나에 일어난다는 말이렷다. 우리나라 여자 선수가 LPGA 정식개막전(2011년 2월 혼다타일랜드)에서 우승을 못했다 해서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다. 약간 섭섭하긴 해도. 원래가…박세리 때부터 우리 낭자들은 늦게 시동이 걸리는 슬로스타터들이니까.

그런데 김인경의 용어도 낯선 ‘퀸튜플보기(quintuple bogey)’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추어들은 더블파 이상을 치지 않는다. 그러니까 파4에서 아무리 못 쳐도 8타 이상 점수가 없다(사실은 적지 않는 거지만). 그런데 김인경은 갑자기 파4에서 보란 듯이 9타를 적어낸 것. 물론 우승권에서 계속 쩡야니를 따라잡던 상황이 지난 겨울 폭설에 못 이긴 비닐하우스 무너지듯 와르르 내려앉고 말았고. 

사건 내막을 돋보기 아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자. 
지난 2월 20일(한국시간) 태국 촌부리 시암 골프장(파72·6477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 4라운드. 쩡야니에 1타 뒤진 공동 2위로 최종라운드에 나선 우리의 김인경, 모두 파4인 2번, 3번, 6번홀에서 버디를 잡아 역시 전반에만 3타를 줄인 쩡야니를 맹추격. 미셀위는 이미 우승이 힘들겠다 싶어졌고, 다른 경쟁자가 나오지 않으면서 후반은 두 선수의 매치플레이 양상. 

그런데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잡아내는 완벽한 플레이로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치던 인경이, 단군 이래 최대 대형 사고를 쳤다. 17번홀(파4)에서 으악~!!! 9타를 치고 말았다. 허무했다. 미셀위에게도 뒤진 공동3위.

우승 기회가 있었기에 더욱 아쉬웠던 경기. 15번홀. 쩡야니가 14번홀(파4)에서 2m짜리 파퍼트를 놓치면서 보기. 한 조 앞서 경기를 한 인경이는 15번홀에서 1.5m 버디 퍼트 찬스를 잡았으나… 볼이 아쉽게 홀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동타를 이룰 기회를 놓쳤다.

계속 1타차, 누구나 해볼 만한 스코어. 이후 쩡야니는 15번홀(파4)에서 정교한 아이언 샷으로 버디를 추가하면서 타수는 2타차로 벌어졌다. 어렵긴 해도 따라잡을 수 있는 차이. 문제는 17번홀! 그린이 페어웨이보다 높이 솟아있는 ‘포대그린’에서 인경이는 무려 여섯 번이나 어프로치 샷을 그린에 올리지 못했다. 7번째 샷 만에 겨우 볼을 그린 엣지에 올린 뒤 2퍼트로 마무리.

이제 김 작가가 오늘 이야기 앞에 어느 가련한 윤락녀이야기를 한 속내를 아시겠는지? 그린 곁에 오면 아무리 못 쳐도(?) 파를 했던 인경이기에 별 문제 없이 ‘작은 위기’를 넘길 줄 알았다. 그런데 가랑비 몇 방울 맞는 것 같던 두 번째 온그린에 실패하더니 갑자기 당황하는 빛이 역력해지고, 채를 내던질 것 같은 얼굴표정을 지었다.

요 아쉬운 경기를 하필이면 윤락의 수렁에 빠져든 여자의 경우에 비교해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골프가 그렇고 인생이 그렇더라. 끝까지 해봐야지 ‘에라~!’ 하고 포기하면 참혹한 결과가 생긴다는 게. 
인경이도 심호흡만 한 번 했더라도 더블이나 트리플보기 정도로 막아 2위는 할 수 있었을 거란 말이다, 이 김 작가 이야기는! /김재화 골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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