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칼럼 - 삶의 뜨락에서

   ◇ 매니큐어 화가 정산스님은 사찰음식이 왜곡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내달 3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일주일간 개최되는 마니프(MANIF) 서울국제아트페어에는 매니큐어 화가로 유명한 정산스님(속명 김연식ㆍ66)의 ‘관조와 명상’ 전이 열린다. 여기에는 그가 지난 1월 프랑스 파리 제12구의 도시 샤랑통이 주최한 살롱전에 명예작가로 초대받아 선보였던 작품들이 그대로 전시된다.

사찰음식 전문점 산촌 대표 정산스님
미 WSJ ‘아시아의 톱10 음식점’ 선정
올초 파리 살롱전 초대받아 특별전도
관조와 명상을 주제로 국내외서 전시

당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다양한 색채와 대담한 형태의 작품들이 명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모네의 연꽃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작품들은 환상적”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첫 번째 국내 전시회(2007년 공화랑)에는 꽃을 주제로 만다라를 표현하고 무욕과 무위의 세계를 추구한 작품을 내놓았다. 2회 전시회(2009년 인사아트센터)에서는 알루미늄 판에 관음보살상을 그렸는데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까지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3회 전시회(2010년 갤러리 담)는 ‘천강에 비친 달’이 주제였다.

전시장 내부와 입구 외벽을 포맥스(아크릴과 비슷한 재질) 성냥갑 3만9천여 개로 가득 채우고 소품들을 배치했는데 보는 방향에 따라 그림이 달라졌다. 천 개의 강에 비친 달의 모습이 각각 다르듯이 유와 무, 색과 공의 양면성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10여 년 전 도자기의 금간 부분에 매니큐어로 무늬를 그려 붙이고 색상에 매료됐다. 유명 화장품 회사는 매니큐어를 무상으로 평생 제공하고 있다.

정산스님은 서울 인사동과 경기 고양시에서 사찰음식전문점 ‘산촌’을 운영하는 채식요리의 권위자이다. 동산불교대학 사찰음식문화학과장을 맡고 있으며 ‘눈으로 먹는 절 음식’ ‘한국사찰음식’ 등 저서도 발간했다. ‘산촌’은 뉴욕타임즈에 소개됐으며 월 스트리트저널의 ‘아시아 톱10 음식점’에 선정될 만큼 외국인에게도 유명한 곳이다. 지난달 31일 ‘산촌’ 3층 작업실로 찾아간 필자에게 스님은 개인사를 들려주었다.

그는 전남 여수의 부잣집에서 5남매의 맏이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을 나온 아버지는 엘리트였지만 첩을 두 명이나 두었다. 어머니가 바느질 할 때면 부르던 노래가 어린 그에게는 울음처럼 들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옥중에서 춘향이가 불렀다는 ‘쑥대머리’였다. 내성적이고 별빛을 좋아한 소년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컸다.

그래서 독서의 길로 내달았다. 세계명작에서 연애소설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천경자 화백의 첫 수필집 ‘유성이 흘러간 곳’이 그의 인생행로를 바꾸게 했다. 수필에서처럼 동백 숲을 지나가는 스님이 보이고 정방사의 저녁 예불 종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달 후 제주로 갔다.

제주 정방사와 여수 흥국사를 거쳐 1961년 부산 범어사에서 행자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나이 16세였다. 행자생활 3년을 지내고 사미계를 받았다. 나물 무치고 국 끓이는 부엌일이 좋아 자청해서 3년 더 일했다. 그 후 전국 24개 교구 본사를 다니면서 사찰마다 전해져 내려오는 음식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1980년 인사동에 ‘산촌’을 차렸다. 조계종의 반대가 심해 몇 해 뒤 태고종으로 종단을 옮겼다. 그는 가끔씩 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아 손님들에게 재즈피아노곡을 선사한다. 정산스님은 “사찰음식은 수행식이자 고행식인데 최근 보양식, 웰빙음식 등으로 왜곡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철 따라 귀한 식재료를 찾아 전국의 산하를 누비며 자연의 색을 저절로 익힌 그에게 음식의 색과 그림의 색은 뿌리가 같아 보였다. 오는 20일부터 우림화랑에서 2주일간 열리는 일본 지진피해민돕기 자선전에서도 스님의 매니큐어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설희관 <언론인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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