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의 운영 비리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영업정지 방침을 전달받은 부산저축은행 관계자들이 영업이 끝난 시간에 예금을 편법으로 인출했다는 사실이 문제의 시발점이었습니다.

친인척과 지역 유지들에게 연락해 예금을 찾아가도록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셔터를 내린 상태에서도 자기들끼리는 이렇게 마음대로 계좌를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고객의 예금을 빼돌려 특수관계에 있는 다른 회사에 무리하게 지원했다는 사실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영업적자 상태인데도 분식회계로 장부를 흑자로 꾸며 거액의 배당을 받아갔다고도 합니다. 돈을 맡겼던 일반 예금주들만 불쌍하게 되었습니다.

저축은행의 전반적인 부동산PF 부실대출 문제가 불거진 터에 불똥은 곧바로 제일저축은행으로 옮겨 붙었습니다. 부동산 개발업체에 거액을 대출해주는 과정에서 어느 간부가 금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소식에 고객들이 객장으로 몰려가 금고가 거의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예금인출 소동을 빚었습니다. 사태는 겨우 진정됐지만 어느 저축은행에서 또 뇌관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사태가 초래되기까지 금융감독원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는 점이 더 심각합니다. 부산저축은행의 경우만 해도 금감원이 지난 10년 동안 몇 차례에 걸쳐 검사를 실시하고도 불법대출과 분식회계를 밝혀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금감원 직원이 대출청탁을 해주고 금품을 받아챙긴 뒷거래도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쯤이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금감원을 방문해 격정을 토로했던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금감원 내부의 그릇된 관행과 조직적인 비리가 문제라는 것이지요. 감독기관의 기강이 풀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선 은행들의 비리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현재 저축은행을 포함한 전체 금융권에서 직원들의 예금편취 및 대출비리 사고가 계속 터져나오는 것이 금감원의 해이해진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최근 금융자율화가 진행되면서 개별 금융회사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인 입김이 줄어드는 반면 금감원의 장악력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과거 은행감독원과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이 통폐합되어 지금의 금감원이 이뤄졌다는 점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직원들이 본연의 감독업무는 젖혀두고 일선 금융회사들과 유착되는 상황에서 문제점이 자꾸 불거지는 것입니다.

현재 시중은행과 보험·증권·카드사 및 저축은행의 현직 감사 가운데 40여명이 금감원의 고위간부 출신이라고 합니다. 저축은행 감사만 해도 2억원 안팎의 연봉과 3년의 임기를 보장받게 됩니다. 이런 대접 때문에 간혹 저축은행 내부에 문제점이 발견되더라도 쉬쉬하고 넘어가게 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한편으로 이번 사태는 정치권이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금감원에 대한 인사개입을 통해 중립성과 자율성을 마비시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국무총리실 주도의 ‘금융감독 혁신 태스크포스’가 가동에 들어감으로써 금감원의 조직과 기능이 어떤 식으로든 조정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다면 분산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며, 주어진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면 제도적으로 독려하고 경고하는 장치도 필요합니다. 권한을 남용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견제장치도 마련돼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율성과 책임성을 확실하게 부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담보되지 않고는 금감원의 조직과 제도를 어떻게 뜯어고치든지 지금처럼 외부에서 개입해야 하는 사태가 또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금융산업의 원활한 발전을 위해서도 유념해야 할 일입니다.  /허영섭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자유칼럼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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