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지키려 산골서 시작한 조상 가업 안성시 양협토기의 장인정신 대물림
40여년 옹기장이 류수봉 씨의 옹고집 비법 전수한 아들이 6대째 가마 지켜

 
경기도 안성은 예부터 유기(놋그릇)와 옹기의 고장이다. 안성맞춤이란 말도 그래서 나왔다. 안성시 보개면 양복리 한적한 국도를 달리다 보면 대형 항아리들을 두 줄로 나란히 포개 놓은 곳이 있다. 안성시 지정 명품제조업체 양협토기(대표 류수봉·65)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에 대규모 옹기공장이 많았으나 지금은 양협토기가 유일하다. 한 세기가 훨씬 넘는 류씨 집안의 옹기 굽는 가업은 신앙에서 비롯됐다.

황해도에 살면서 천주교에 귀의한 조상들은 박해를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어 생계수단으로 옹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러나 감시의 눈초리 때문에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류씨의 부친이 안성에 정착하고 나서야 마음 놓고 옹기를 구워낼 수 있었다.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의 총칭이다.

질그릇은 점토로 빚어 그대로 구운 것이고 오지그릇은 질그릇에 유약(잿물)을 입혀 구워낸 용기를 말한다. 가업을 5대째 이어받아 40여 년간 옹기를 구워온 류씨는 옹기의 뛰어난 효능과 가치를 외면하는 세태를 안타까워 한다. 그래서 옹기장이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아들 상근 씨(35)가 믿음직스럽고 대견하다.

가마를 대물림 해줘도 손색이 없겠다는 믿음도 생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첨단시대에 ‘독 짓는 젊은이’로 전통옹기의 맥을 잇겠다는 효심에 마음이 짠해진다.

상근 씨는 상지대 공예과(도예전공)를 졸업한 뒤 옹기대장으로 가마의 불과 유약을 책임지고 거나꾼(조수) 5명과 땀을 흘리고 있다. 그는 “이 일은 10년 이상 배워야 눈이 트인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김치냉장고가 나오고 스테인리스와 플라스틱 용기의 발달로 옹기사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었지만 조상 대대로 이어온 가업을 잇기로 했습니다.”고 말했다.

잘 구워낸 옹기는 사람의 피부처럼 숨을 쉰다고 한다. 모래가 섞여 있는 사토를 쓰기 때문에 옹기 표면의 거친 부분이 숨구멍이라는 설명이다. 옛날 할머니들은 간장과 된장 독에 하얀 소금 꽃이 피어나면 좋은 항아리라고 했다.

양협토기는 전통방식으로 잿물을 직접 만들어 쓰는데 각종 옹기에 납·카드뮴·수은 등 중금속이 들어있지 않다는 한국요업기술원의 무공해 항아리 인증을 받았다. 10여 년 전 재래식 불 가마를 없애고 수동식 기름가마와 자동식 전기가마를 설치한 뒤 생산효율도 높아졌다.

양협토기는 쌀독·생수독·냉장고용 김치항아리·콩나물시루·새우젓통·밥그릇·뚝배기 등 생활옹기에서부터 중대형 항아리까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260ℓ들이 큰 항아리인 양자리(85㎝×95㎝)와 대자리(75㎝×85㎝ 200ℓ), 중대자리(70㎝×70㎝ 140ℓ)는 김치공장과 된장·간장 공장, 양조장 등에서 많이 사간다. 전북 완주군 농협은 200ℓ들이 대자리 항아리를 매년 50여 개씩 주문해 특산품인 감식초 저장용으로 사용, 숙성시킨 맛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충북 영동과 경기 가평의 된장공장도 단골이다.

일본 양조업자는 정종 등 술을 발효시키는 용기로 사용하기 위해 대형 항아리를 주문하고 있다. 한때는 높이가 2m 넘는 500ℓ들이도 많이 팔았고 8ℓ짜리 술독은 해마다 수백 개씩 수출했다. 양협토기를 찾아가면서 옹기장이 노인의 장인정신을 그린 황순원의 단편소설 ‘독 짓는 늙은이’와 최근 별세한 배우 김인문 씨(72)가 투병 중에 제작, 주연해 리메이크한 동명의 영화가 잇달아 생각났다.

양협토기의 ‘옹고집 옹기장이’ 류수봉 씨와 ‘독 짓는 젊은이’ 상근 씨의 전통계승과 대물림도 소설이나 영화처럼 아름답다. /설희관 <언론인·시인>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