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고기를 구워먹는 식당이 일본에 등장했다는 방송 보도를 한 달쯤 전에 보았습니다.

도쿄 우에노에 문을 연 ひとり(히토리·나 혼자)라는 식당은 혼자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전문 고깃집입니다. 이 식당에는 높이 1.4m, 가로 70cm, 세로 60cm 크기의 독서실 칸막이 책상 같은 탁자가 25개 설치돼 있습니다.

손님들은 1인분에 400엔 정도 하는 갈비를 혼자서 구워 먹고 갑니다. 이용자는 젊은 층에서 중년층까지 다양하지만, 특히 여성이 많습니다. 혼자서 고기를 먹고 싶어도 갈 만한 식당이 없었는데 남 눈치 보지 않고 실컷 고기를 먹을 수 있어 좋다는 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반응이라고 합니다. 식당 안을 돌아다녀 봐야 식사를 하는 손님들의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기사를 보면서 ‘역시 일본인들답구나’, ‘그런데 무슨 청승으로 혼자서 고기를 구워 먹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이번엔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식당이 생기고 있다는 신문 기사가 나왔습니다.

아직은 일본처럼 칸막이 시설을 완벽하게 한 곳은 흔하지 않지만, 혼자 온 사람들이 나란히 늘어앉아 남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식사할 수 있게 1인용 좌석을 놓은 곳은 많다고 합니다. 몇 년 전부터 혼자 오는 손님들이 늘어나 이런 좌석을 설치하게 됐다니 서울에도 곧 ‘칸막이 독서실 식당’이 생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식당이 생긴다 해도 찾아갈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평소 고기를 즐겨 먹는 편도 아니지만, 여러 사람이 어울려 즐겁게 떠들고 술 한 잔 하면서 먹는 게 좋지 몰래 숨어서 나쁜 짓 하듯 혼자서 젓가락 들고 호비작거리는 건 체질에 맞지 않습니다.

내가 고기를 많이 먹은 것은 신문사에 들어와 사회부에서 수습을 할 때입니다. 선배들은 술과 고기를 질리도록 사주었고, 고기를 잘 먹는 놈이 일도 잘한다며 이뻐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고기를 맛있게 잘 먹지도 못하는 데다 구울 줄도 몰랐습니다. 선배가 집게로 고기를 뒤집어 구워 놓으면 호르륵 먹어버리곤 하던 동기 때문에 함께 혼이 난 일도 있습니다. 고기를 구울 줄은 모르고 먹기만 하는 건 얌체짓인 게 분명합니다.

작은 업체를 운영하는 내 친구는 직원들과 고기를 함께 먹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어느 날 전 직원 회식을 할 때, 그는 전과 다름없이 고기를 구웠습니다. 그걸 본 남자 직원이 “제가 할게요.”하며 집게와 가위를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직원이 “사장님이 하시게 해. 사장님 고기 잘 구워.” 그러더랍니다. 그는 기가 막혔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고기를 구워 접시에 담아 주기까지 했다면서 받아먹을 줄만 아는 요즘 젊은이들을 흉보았습니다. “그 애들은 내가 고기를 굽는 게 좋아서 그러는 줄 아나 봐” 하는 말도 했습니다.

내가 아는 한 법조인은 함께 밥을 먹을 때마다 언제나 맨 구석 자리에 벽에 기대고 따개비처럼 붙어 앉습니다.

나를 위해서든 남들을 위해서든 고기를 구워야겠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습니다. 남을 위해 반찬그릇을 옮겨 주는 법도 없고, 수젓가락을 놓아 주는 법도 없고, 컵에 물을 따라 주는 일도 하지 않습니다.

남이 고기를 구워 놓으면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먹기만 합니다. 남을 섬길 줄 모르고 늘 대접만 받으며 살아온 탓일 것입니다. 고기는 혼자 먹으려 하지 말고, 남이 구워놓은 걸 먹으려만 하지 말고, 남들을 위해서 구울 줄 알아야 합니다.

서투른 솜씨로라도 구운 고기를 가위로 썰어 남들에게 나눠줄 줄 아는 사람은 고기 맛과, 고기를 함께 먹는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라야 고기를 함께 먹을 만합니다.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 사람은 이제부터 혼자 먹는 식당을 찾아가는 게 좋을 것입니다. /임철순 한국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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