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산악사진가 조준 씨의 꿈향한 열정
찰나를 렌즈에 담기 위해 30㎏배낭 매고
해발 1,000m가 넘는 산을 주1회씩 고행
전설의 거장 엔셀 아담스가 정신적 멘토


산악사진가 조 준 씨(32)는 산마루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찍기 위해 한여름에도 30㎏이 넘는 촬영 장비를 매고 2~7시간씩 산에 오른다.

해돋이와 달맞이 풍경을 놓칠세라 칠흑의 험한 산길을 걷거나 눈밭에 푹푹 빠지는 고행도 즐겁고 행복해한다. 주 1회 해발 1000m급 큰 산을 찾아다니는 촬영산행이 꿈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지난달 23일 서울 남부터미널 근처 찻집에서 만난 조 씨는 반듯하고 예의 바른 청년이었다. 그는 전북 익산의 부유한 가정에서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홉 살 무렵 아버지(67)의 사업이 갑자기 기울어 생활이 곤궁해졌다. 중고교 시절에는 장학생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공부 아닌 다른 꿈을 이루기 위해 자퇴했다. 몇 년 뒤 검정고시를 거쳐 전북대에 합격했지만, 세상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어 진학을 안 했다.

이때부터 공사장 일꾼, 주유원, 열쇠수리, 도배시공, 실내인테리어, 대형버스운전, 영어 학습지 교사, 웹 마스터, 프로그래머, 컴퓨터 AS 기사 등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틈틈이 풍경 사진을 찍으러 다니며 촬영기법을 익혔다.

◇산악사진가 조 준 씨가 무거운 배낭을 매고 정상을 향해 산길을 가고 있다.

2002년 익산에 조그만 사진관을 냈다. 수입은 괜찮았으나 산 사진이 좋아 2008년 사업을 접고 산악사진에 매달렸다. 처음에는 가까운 사람들까지도 반응이 시큰둥했다. “풍경 찍어서 달력 사진 만들려고? 그거 돈이 안 될 텐데 무엇 때문에 고생하느냐?” 그래도 집에서 가까운 덕유산을 자주 찾으면서 기본부터 익혔다.

지리산에서는 조난당할 뻔도 했다. 별 사진을 찍기 위해 대형 카메라와 렌즈, 삼각대, 노출계, 필터, 필름 홀더, 식료품, 침낭 등 40㎏이 넘는 배낭을 지고 올라가다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졌다.

정신을 차려 기다시피 장터목 대피소까지 갈 수 있었다. 조 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저의 꿈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산하의 아름다움, 그중에서도 산악의 절대미를 표현하고 싶습니다. 흑백풍경사진의 거장으로 사제지간인 미국의 엔셀 아담스와 존 섹스톤을 정신적인 멘토로 삼아 정진하겠습니다.”

사진이 수십만 장 쌓이자 전시회를 통해 엄선한 작품을 선보였다. 2010년 서울 삼청동 정독갤러리 초대전에는 3000명 넘게 몰렸다. 같은 해 내장산 국립공원에서 연 전시회는 산악인들이 호평했다. 특히 지리산 장터목 대피소의 일몰, 덕유산 상고대의 별 무리, 눈 내린 대둔산 신선대의 야경 등이 찬사를 받았다.

1980년대 이후 쇠락해온 풍경 사진계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년에는 산과 별 사진을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2010년 2월에는 행운도 찾아왔다. 외국의 유명주류회사가 주최한 ‘킵워킹펀드’ 공모전에 선발돼 1억 원의 상금을 받은 것이다.

그 돈은 꿈을 펌프질하는 ‘마중물’이 되고 있다. 신장 174㎝, 체중 75㎏인 조 씨는 항상 체력을 단련시킨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당분간은 결혼계획도 없다. 아니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산으로만 돌아다니는 사람을 좋아할 여자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정상에서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며칠씩 기다리기 일쑤이다. 그러다 보니 포토그래퍼의 철저한 직업정신과 근성이 몸에 배었다. 조 씨는 유능한 신진사진작가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최근 부쩍 바빠졌다.

지난달 19일 제주국제관악제에 참가한 ‘하트하트오케스트라’가 한라산 천지연폭포 야외무대에서 공연한 콘서트에 재능기부를 했다. 국내최초의 발달장애청소년 오케스트라여서 느낀 점도 많았다. 30일에는 KBS1 FM 라디오 ‘나의 삶 나의 보람’에 초대받았다. 세계적인 산악사진가의 꿈을 간직한 젊은이의 노력과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설희관〈언론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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