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성태훈 씨 ‘날아라! 닭’ 전시회
날개 퇴화된 도도새의 멸종을 반면교사로
가난·교통사고 딛고 세상과 소통하는 작가
내년에는 닭이 국조인 프랑스에서 국제전

중견 한국화가 성태훈 씨(44)의 작품에는 초록매화의 나뭇가지 사이로 닭과 병아리가 힘차게 날아다닌다. 그는 왜 날개가 퇴화해서 날지 못하는 닭과 현실에 없는 초록매화를 주제로 삼을까?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KSD 갤러리에서 ‘날아라! 닭’ 전시회를 열고 있는 작가를 만났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두 차례 특선한 성 씨는 2000년부터 해마다 개인전을 열고 있는데 2009년 이후 전시회 명칭이 ‘날아라! 닭’이다. 어려서부터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을 유난히 좋아했다는 성 씨는 홍익대와 홍익대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등록금 때문에 제적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교수들과 주위의 도움으로 2010년에는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박사과정까지 마칠 수 있었다.

대학 2학년 때인 1988년 인천에서 아르바이트가 늦게 끝나 택시를 타고 서울로 오다가 경인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었다. 졸음운전 하던 택시가 트럭과 정면충돌한 것이다. 10여 일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4개월 동안 병상에 있었다.

사고소식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다가 별세했다. 퇴원 후에는 오진으로 밝혀졌지만 폐결핵 말기라는 판정을 받아 눈앞이 캄캄했다.

◇중견 한국화가 성태훈 씨가 ‘날아라! 닭’ 전시회에서 포즈를 취했다.

삶을 포기하려고 양화대교 난간에 서기도 했다. 2005년 경기도 남양주시 송촌리에서 닭 몇 마리를 기르며 살 때였다. 가끔씩 지붕과 나무 위로 날아오르는 닭을 보면서 자신을 생각했다. 비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닭은 예부터 동양에서 상서롭고 신성한 동물로 여겨왔다. 닭은 벽사의 의미와 함께 새벽을 알리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는 여기에 봄의 전령인 매화, 그것도 홍매화나 백매화가 아니라 현실에는 없는 초록매화를 매치시킨다.

미술평론가 장동광 씨는 “성태훈의 초록색 매화는 모순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의 꽃을 피우고 싶다는 의지이며, 사육된 닭이 하늘을 나는 모습은 꿈의 징표로써 독특한 패러독스(역설)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성 씨는 독일과 미국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지난해 뉴욕국제아트엑스포에 초대됐다. 그는 2~3년에 한 번씩 그림에 변화를 주면서 화폭에 역사도 기록한다.

2002년 공평아트센터에서 개최한 ‘역사현장-공존’은 미국 9.11테러사건이 동기이다. 당시 세 살배기 딸이 마치 게임을 즐기듯 텔레비전의 테러장면을 반복적으로 보는데서 착안했다. 폐허를 통해 인간의 황폐화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당시 오광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작품을 보고 ‘실험적인 한국화’라고 평가, 화단의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홍익대, 중앙대, 세종대, 성신여대에 출강하고 있는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월전미술관, 독일 라이프치히 국립민속박물관, 미국 아스토 뮤지엄 등에 소장돼 있다.

신재선 시인은 성 씨의 개인전을 본 뒤 “닭이 난다./ 이곳을 떠나 저곳으로 날았지만/ 닭이 날아봤자 얼마나 날겠느냐?/ 걱정하지 마라 계속 날다보면/ 곧 봉황이 된다”는 내용의 시를 작가에게 보내왔다.

성 씨는 내년 7월 뉴욕의 첼시에서 전시회를 연다. 프랑스 파리에서도 ‘날아라! 닭’ 전을 계획하고 있는데 프랑스의 국조가 닭이어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작가는 닭도 그렇지만 도도새의 교훈을 마음속에 깊이 새긴다.

“인도양의 모리셔스 섬에 서식하던 도도새는 포유류가 없어 하늘을 날 필요가 없어져 날개가 퇴화했지요. 400여 년 전 섬을 발견한 포르투칼인들이 도도새를 남획하는 바람에 멸종됐고요. 작가도 현실에 안주하면 도도새처럼 퇴화하기 때문에 날지 못하는 닭이 날갯짓 하듯이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비록 굴곡이 많았지만 이제는 탄탄한 궤도에 올라 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작가의 비상을 응원한다.  /설희관 〈언론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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