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저 경호동 무상 임대문제가 언론에 몇 차례 오르내렸다.

서울시가 전 전 대통령 경호동 부지인 서대문구 연희동 95번지 일대 시유지의 임대 기간이 끝나는 4월 이후에는 더 이상 무상사용을 할 수 없으니 대안을 마련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서울지방경찰청에 보냈다.

시는 경호동 폐쇄 또는 정부가 경호동 부지와 건물을 매입하는 방안, 사용 비용을 물리는 문제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결과가 주목된다.

필자는 전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다름 아닌 한국불교 최대의 사찰인 능인선원 원장 지광 스님이다. 스님은 원래 아우구스티노라는 세례명을 받은 가톨릭 신자였다.

그는 한국일보 기자로 재직 중이던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해직 됐다.
계엄철폐와 언론검열거부 등을 주장하는 기자들의 밤샘농성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것이다.

신군부는 같은 해 7월 중순부터 11월까지 소위 언론인 숙정과 언론사 강제통폐합조치로 1000여 명에 이르는 언론인들의 생업을 박탈했던 것이다.

1950년생으로 속명이 이정섭인 스님은 지리산과 덕유산의 선방과 토굴에 들어가 수행하면서 사실상 출가했다.

전남 구례군 화엄사 인근의 토굴암자에서 수행하면서 만난 스님들의 법담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느 날 지리산 등반 중 길을 잃고 헤매다 쓰러진 부부를 정성껏 간호하고 보살폈다. 기운을 차린 부부는 서울에 오면 꼭 한 번 찾아달라며 주소를 남기고 떠났다.

1984년 말 선방과 토굴의 고된 수행으로 지친 몸을 추스르기 위해 산에서 내려와 서울 서초동의 그 부부 집에 잠시 머물렀다.

스님은 독실한 불교 신자인 부부에게 천수경을 해설하고 불교의 교리를 요약해서 설명했다. 지광 스님의 설법에는 힘이 있고 듣는 이로 하여금 희망을 품게 한다는 입소문이 퍼져 불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서울고 재학 시부터 영어를 잘한 스님은 신도들의 자녀들에게 불경을 영어로 강의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1985년 12월 서울 강남구 서초동의 한 상가 안의 28평짜리 사무실을 보증금 500만 원, 월세 15만 원에 임대해 포교원 능인선원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신도는 10여 명에 불과했다.

10년 동안 포교와 전법에 전념하여 신도 수가 급증하자 1995년 8월 현재의 강남구 포이동에 능인선원을 건립했다. 같은 해 11월 하순 전국의 모든 신문과 방송은 전두환·노태우 씨 등의 의법처리를 골자로 한 5.18 특별법 제정 문제를 연일 톱뉴스로 다루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능인선원은 12월 1일 동양최대 규모의 불교 복지시설인 능인종합사회복지관을 개관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지혜와 자비를 바탕으로 불자 양성과 포교 및 사회복지 증진을 위한 수행도량이 되고자 한 설립 목적에 따른 것이었다.

능인선원은 해마다 6000~1만여 명의 불자를 배출한다. 현재 등록 신도는 25만여 명이며 능인불교대학 졸업자만 15만 명에 달한다. 교구본사도 아닌 도심의 포교사찰인 능인선원이 지원하고 있는 사찰도 3곳이나 된다.

경기 고양시 북한산 자락의 국녕사,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용장사, 경기 고양시 원당의 석룡사 등이다. 중국 천진, 태국 방콕, 캐나다 토론토 등에도 지원을 두고 있다.

보시금과 신도들의 저축, 대출을 관리하는 능인신용협동조합은 회원이 2300여 명이며 자본규모가 300억 원에 달한다.

2007년 8월 신정아 씨 허위학력 파문 이후 서울대 중퇴 학력이 사실이 아니라고 스스로 밝힌 스님은 방송통신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2009년 8월 서울대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능인선원은 2013년 개교를 목표로 경기도 화성에 능인불교대학원대학을 건립 중이다. 지광 스님은 하버드, 프린스턴, 소르본 등 외국 유명대학에서 이따금 영어 설법도 한다.

30년 전 해직기자의 치열한 구도의 삶, 드라마 같은 인생유전이다. /설희관 언론인·시인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