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황혼빛에 물들은 여인의 눈동자~
조용히 들려오는 조개들의 옛 이야기, 말없이 바라보는 해변의 여인아~

스튜디오 안에서 나훈아의 <해변의 여인>을 흐드러지게 부르고 있는 사람은 천하의 너후나다.
나훈아도 아닌 나훈아 모창가수 너후나를 천하의 너후나라고 칭한 것은 짝퉁이라고 똑같은 짝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부르는 곳이 많아 스케줄 관리하는 매니저가 따로 있으며 못 믿겠지만 팬클럽도 있다. 그리고 얼마 전엔 일본 원정 공연까지 다녀왔을 정도이니 그는 분명 천지빼까리인 나훈나 모창가수들 중 특A 짝퉁이다. 그런 너후나가 나우나를 녹음실로 부른 것이다.

 
“아~ 돌아삐네! 할 끼야 말 끼야! 그것만 말하라 카이!”“형, <해변의 여인> 부른 적은 있어도 본 적은 없제? 낸 오늘 봤다.”

이곳에 오기 전 포장마차에서 보았다는 여자 이야기를 하며 번들번들 웃고 있는 우나.

“니 자꾸 딴 소리 할래! 우나야, 메들리는 이 시대의 흐름이야! 니 경험도 쌓을 겸 내캉 판 내자. 으잉?”

너후나는 우나에게 <따블 나훈아>란 제목으로 메들리 CD를 내자고 했다. 말이 좋아 <따블 나훈아>지 노래는 너후나의 몫이고 우나는 옆에서 그저 ‘앗싸!’, ‘얼씨구!’ ‘사이 사이!’ 등의 추임새를 넣는 것이 전부인 조건이었다.

우나는 거절했다. 지금은 비록 밤무대에서 노래를 하고 있지만 우나의 꿈은 정식 가수가 되는 것이다. 하긴, 처음부터 나훈아 모창이 꿈이었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나는 밤무대에서 나훈아 흉내를 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따블 나훈아>에서 ‘앗사라비아 콜롬비아’등등의 의미 없는 추임새를 외치고 싶지는 않았다. 우나는 경험상으로 알고 있다. 면전이라 거절하기 어려울 땐 말 돌리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우와~ 해변의 여인이 가락국시 시키데. 형아, 해변의 여인이면 바지락 칼국시 시켜야 하는 거 아이가?”

우나에게 약이 오른 너후나가 참다못해 소리쳤다.
“니는 경상도 아도 아닌 게 와 사투리 쓰노!”
“그런 형아야는 나훈아도 아닌 게 와 나훈아 흉내 내노?”

너후나는 말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우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니, 니 이름으로 된 판 하나 내는 게 소원이라 캤제? 까놓고 이바구해서 업소에서 일수 찍어 가 그 돈 벌기 힘들어! 니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

일수란 말에 우나는 불에 덴 듯 번쩍 일어섰다.
“내 다이어리!”
우나는 그제서야 자신이 다이어리를 잃어 버렸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여자에 한 눈이 팔려 밥줄을 잃어버리다니!’
우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번지는 것 같았다.
다이어리를 잃어 버렸음을 안 우나가 달려 간 곳은 성인나이트 클럽 <일번지>다.

그곳 출연자 대기실에선 원색 양복을 입은 지배인과 인어공주인 양 반짝이 원피스를 입은 무희 아가씨 그리고 도복 차림의 차력사가 둘러 앉아 고스톱 판을 벌이고 있었다.

“으따, 그렇게 야그하면 곤란해 불제 잉. 일수 수첩 없이 케라를 받겠다니? 고것이 말이당가? 막걸리당가?”

원색의 양복을 입은 지배인이 화투장을 내려치며 우나에게 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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