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 문학제가 지난 3일과 4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세미나실과 연희동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잇달아 열렸다.

‘언어의 보석, 어둠 속의 연금술사들’이란 주제의 심포지엄에서는 1912년생인 백석, 김용호, 설정식, 정소파, 이호우 시인의 문학적 업적과 생애가 객관적으로 조명되고 정리됐다. 이들은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를 거치면서도 모국어를 갈고 닦아 보석처럼 빛나는 시어를 만들어 낸 연금술사에 비유됐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과 한국작가회의(이사장 이시영)가 공동주최하고 서울시가 후원한 이 행사는 올해로 12번째다. 2001년 김동환, 박종화, 심훈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90여 명의 기라성 같은 작가가 문학제에 ‘초대’됐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가장 주목받은 작가는 백석 시인(1912~1995)이었다. 문학평론가인 고형진 고려대 교수는 ‘백석 시의 매력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한국의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꼽히는 백석 시의 매력은 시의 기본 바탕을 이루는 언어와 그 언어의 미적 활용에 있다” 며 “대부분의 시에서 상당 부분 가공되지 않은 자연어가 발산하는 친근한 정감과 숙성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백석은 평북 정주에서 태어나 1918년 오산중학교를 마치고 일본 도쿄의 아오야마 학원 영어사범과를 졸업한 뒤 조선일보사에 잠시 근무했다. 함흥 영생여고 영어교사로 재직 시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재색을 겸비한 기생 김영한을 만난다. 백석이 그녀에게 바친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지금도 널리 애송되고 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중략)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김영한은 서울 성북동의 고급요정 대원각을 1995년 법정 스님에게 맡겨 길상사로 거듭나게 한 뒤 4년 뒤 별세했다. 그녀는 “시가 천억 원의 대원각을 내놓고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천억 원이 그 사람의 시 한 줄만 못해. 나도 다시 태어나면 시를 쓸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내달 30일 서울여대에서 ‘백석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열리고 9월에는 국내 화가 10명이 백석의 시를 그림으로 형상화한 ‘백석 탄생 100주년 기념 문학그림전’이 개최된다.

5명의 문인 가운데 정소파 시조시인은 아직도 ‘현역’이다. 문단의 최고령인 시인은 요즘도 광주에서 시와 시조를 쓴다. 1930년 잡지 개벽에 시조 ‘별건곤’을 발표하면서 등단한 시인은 일본 와세다 대학 문학과를 졸업한 뒤 마흔다섯의 나이에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당선됐다.

이번 문학제를 통해 비운의 작가 설정식(1912~1953)시인의 문학과 삶도 재조명됐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그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해방 이후 최초로 완역하고 시집 세 권을 잇달아 내는 등 왕성한 창작 활동을 했으나 6.25 전쟁 때 월북, 개성휴전회담 북측 영어통역관을 지낸 뒤 임화 등과 ‘미제 스파이’ 누명을 쓰고 처형됐다.

4일 밤 연희문학창작촌 야외무대에서 ‘고조곤히 바람결에 노래하며’를 주제로 열린 문학의 밤 행사에서는 김용호 시인의 시를 가곡으로 만든 ‘저 구름 흘러가는 곳’도 불려졌다. 주최측이 광주에 가서 인터뷰한 정소파 시인의 동영상도 공개됐으며 이호우 시인을 기리는 시조창도 있었다.

이 시인은 청마 유치환 시인과의 순애보로 유명한 작고한 시조시인 이영도와 남매지간이다. 대산문화재단의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는 이 땅의 문학도들에게 온고지신을 일깨우는 값진 행사이다. /설희관 언론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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