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돌아왔다. 휴가(休暇)의 휴(休)란 쉬는 것이다. 활력의 재충전이다. 푸근한 어머니의 품이다. 지친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행복의 묘약이다. 휴를 뜻하는 영어 레크리에이션(recreation)은 동시에 리크리에이션(re-creation)이다. 휴에는 쉰다는 뜻 외에 재창조(再創造)라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休는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쉬고 있는 모습을 상형한 회의문자(會意文字)다. 산과 바다도 있고, 인간과 가까운 동물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나무 木자가 들어간 휴를 썼을까. 무언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사람을 쉬게 하는 데 나무나 숲보다 더 좋은 것은 없더라는 인류의 오랜 지혜가 녹아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서양에도 같은 이론이 존재한다. 인간은 숲에 가야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건강해진다는 이론이다.

인간은 수백만 년 전, 열대(熱帶) 초원지대인 동부 아프리카 사바나(savanna)지역에서 생겨나 숲과 더불어 살아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사람과 가장 가까운 고릴라, 침팬지 등 영장류(靈長類)들이 여전히 숲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 그런 연유(緣由)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신경과학자인 미국 미시간대학의 마크 버먼 박사는 2010년 8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연 속에서, 그리고 도심에서 산책한 사람의 기억효과를 비교·분석한 결과, 전자(前者)의 기억능력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도심에서는 뇌가 끝임 없이 외부 자극을 받아 쉬지 못하지만, 자연 속에서는 휴식할 시간을 얻기 때문이라고 했다.
 
숲은 인간의 병을 치유하는 능력까지 갖는다. 그래서 ‘그린닥터’로도 통한다. 숲의 환경은 질병치료를 돕기 때문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숲에 끌린다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학 윌슨 교수는 이 같은 심리를 ‘바이오필리아’ 가설(假說)로 설명한다. 숲의 환경을 이용해 인체의 면역력을 높인다는 개념이다.
 
독일과 일본에선 숲을 암환자 치료에 활용한다. 일본대학 모리모토(森本) 교수팀은 2008년, 암환자를 대상으로 숲 치유 효과를 관찰했더니, 면역세포인 NK(자연살해)세포가 증가한 반면에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는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네랄린 호르몬은 크게 감소하더라고 했다. 숲에는 나무에서 내뿜는 피톤치드(Phytoncide)와 음(陰)이온, 벌레소리, 새소리 등 자연환경이 스트레스를 줄이고 심신을 이완시켜 면역력을 높이더라는 것이다.
 
휴가 어째서 인간이 나무에 기대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지 설명이 됐을 줄 안다. 이처럼 중요한 휴라는 개념에 대해 우리는 대부분 무지(無知)하다. 너무 일에만 빠져 산다. 일만 하고 있으면 만사 오케이일 것으로 착각한다. 경제발전으로 삶의 ‘양(量)’은 풍부해졌을지 모르지만, ‘질(質)’은 세계 최하위라는 통계가 이를 잘 말해 준다. OECD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근로시간은 2010년 기준 연(年) 2193시간. 회원국 가운데 최장(最長)이다. 주 5일제 근무가 정착되면서 많이 줄었는데도 그렇다.
 
‘놀기학’ 전도사로 꼽히는 <노는 만큼 성공한다>의 저자, 김정운(金珽運) 명지대 교수는 사회의 지나친 경쟁 조장이 사람들을 일로 내몰고, 이는 결국 나라를 망칠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재미있게 놀아야 창의력이 샘솟고, 자기계발을 통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 속에 파묻혀 사는 직장인들아! 참신한 아이디어가 필요한가? 그럼 휴 속에 풍덩 빠져 보라. 지금 당장 컴퓨터 데스크에서 벗어나 휴의 숲으로 달려가라. 나무에 기대어 일상에 녹슨 칼을 벼리라. 무딘 칼날로는 무조차 벨 수 없다. 예리해진 두되만이 신천지 개척에 필요한 무기로 쓸 수 있다. 휴는 쉬는 것만이 아니다. ‘재창조’다.
 
조남준
전 월간조선 이사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