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남일이가 이랬답니다. ‘야, 명보야 밥 먹자!’ 새까만 후배의 느닷없는 반말에 명보의 얼굴은 한 순간 돌덩이처럼 굳어버렸답니다.

며칠 전 ‘2002 한일 월드컵’ 10주년을 기념해 열린 2002년 대표팀과 2012년 K리그 올스타팀의 축구경기에서 10년 전의 그 멋진 ‘어퍼컷 세레머니’를 재연한 히딩크 감독을 보면서 그 당시 ‘영원한 캡틴’ 홍명보와 ‘진공청소기’ 김남일 사이에 있었다는 이 에피소드가 생각났습니다.

히딩크 감독이 우리 축구에 남긴 가르침과 일화와 명언은 무수히 많습니다.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라는 말이 대표적 명언이지요. 하지만 저는 ‘선수들끼리는 반말을 하라’는 지시가 더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축구는 선수들 사이에 선후배 간 위계질서가 너무 강하다. 패스하는 순간에도 선배 눈치를 보고, 존댓말로 의사를 주고받으니 효율이 떨어진다. 축구장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우선 선수들끼리 반말을 하도록 해 불필요한 위계질서를 없애고 경기력을 끌어 올리겠다’는 게 이 지시에 담긴 뜻이었다지요. 이런 지시가 있었으니 평소에도 별 거침없는 김남일 선수가 대선배이자 주장인 홍명보 선수에게 농담 삼아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히딩크 감독이 선수들에게 요구했던 건 ‘소통’일 겁니다. 소통이 원활해야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고 본 것이지요. 그의 생각대로 우리 선수들은, 꼭 반말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경기장에서 서로 긴밀히 소통하면서 승승장구를 거듭, 결국에는 4강 진출이라는 위업을 쌓을 수 있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대선의 계절입니다. 출퇴근길에 라디오를 켜면 대선주자 혹은 대선주자의 핵심 참모들 인터뷰를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그저께 한 유력 대선주자의 핵심 참모가 나와서 자신이 모시는 ○○○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님께서는 그런 생각이 아니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고를 드리면 그게 아니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시기도 합니다”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10여분에 걸친 인터뷰에서 그는 한두 번도 아니고 끝까지 ○○○씨에 대해 이렇게 극존칭을 썼습니다.

듣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모시는 사람에 대한 자신의 존경심을 시청자에게 강요했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당사자가 없는 자리라고 해도 극존칭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겁니다. 힘 있는 ‘갑’에 대한 약한 ‘을’들의 전형적 자세지요.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누가 일러바치기라도 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기도 합니다.

이런 이상한 극존칭 쓰기는 회사원이나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흔합니다. 제3자에게 자신이 모시는 회장이나 사장, 장관이나 차관은 물론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지위가 높은 사람에 대해 말할 때 듣는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존댓말 바로쓰기는 초등학교에서 배우지요. 할아버지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할 때는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출근하셨습니다’가 아니라 ‘할아버지, 아버지는 출근했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도 그 무렵 배웁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보다 더 어른이기 때문이지요.

○○○씨 측근들의 극존칭 사용 역시 소통의 문제를 일으킬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얼어붙을 정도로 극존칭을 사용하는데 어찌 자유롭고 민주적인 소통이 가능하겠습니까? 내부 소통에서도 문제가 생기겠지만 국민보다 자신들의 지도자를 상위에 두는 말투는 진짜 ‘갑’인 국민들과의 소통도 멀어지게 할 겁니다.

순간순간 급하게 돌아가는 축구판이 아니니 반말까지는 몰라도 국민을 도외시하는 그런 극존칭은 이제 그만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극존칭을 써야 한다면 국민에게만 썼으면 더 좋겠고요. /정숭호 코스카저널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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