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이 한창이던 어느 날, 지인들의 모임에서 묘비명과 유언장, 장례식 등에 대한 대화가 한참이나 오갔다. 남자 58kg급 태권도 경기에서 아깝게 금메달을 놓친 이대훈 선수(20·용인대)가 어려서 써놓았다는 묘비명이 대화의 물꼬를 텄다.

이 선수가 중학교 2학년 수업시간에 ‘먼 훗날 여러분이 죽고 난 뒤 묘비에 어떤 글이 쓰여지기를 원하느냐?’는 과제를 받고 “태권도 국가대표로 2012년, 2016년, 2020년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하고 99세에 눈을 감았다”고 썼다는 것이다.

이 선수의 아버지는 아들이 묘비명에 그림까지 그려 앨범에 끼워 놓고 수시로 보면서 꿈을 키워 왔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2011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인 그는 이번 올림픽에서 그랜드슬램에 도전했으나 결승전에서 좌절했다.

올림픽 리듬체조 개인종합에서 당당히 5위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한 손연재 선수(18ㆍ세종고 3)가 4~8년 후 올림픽 메달을 벌써부터 가슴에 그리듯 약관(弱冠)의 이 선수도 그랜드슬램을 기필코 달성할 것이다.

영국의 극작가이며 소설가인 조지 버나드 쇼(1856~1950)의 널리 알려진 묘비명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이다. 19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1938년 ‘마이 페어 레이디’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뒤 94세까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다간 사람이 우물쭈물한 인생이었노라는 말을 남긴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가수 조영남 씨가 2010년 불러 중장년층에 널리 사랑받고 있는 ‘모란동백’은 노랫말이 절절해 가슴 시리다.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속에 찾아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고달파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말아요//

조 씨는 이 노래를 리메이크하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유명 가수의 장례식장에서는 고인의 히트곡을 부르거나 연주하는데, 내가 죽으면 ‘섬진강 줄기 따라 화개장터엔? 하는 노래 ‘화개장터’를 부를까 싶어 나의 만가(輓歌)용으로 모란동백을 리메이크했다”고 말했다.

몇 해 전 생전장(生前葬)을 주제로 한 영화 ‘Get Low’가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됐다. 1930년대 미국 남부 테네시의 깊은 산골에서 40년간 은둔생활을 하던 노인이 마을로 내려오자 동네 사람들이 모두 그를 경계했다.

주인공은 장례회사를 찾아가 생전장 당일만 자신이 운영하는 복권에 당첨되는 조문객에게 땅을 주겠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의 ‘장례 파티’에는 전국 각지에서 1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날 모임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간 친구는 “우리나라 교포가 캐나다에서 죽기 전에 자신의 장례식을 치러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평생을 의사로 일한 교포는 80세에 말기 암 판정을 받은 뒤 자신의 장례식 광고를 신문에 냈는데 300여 명의 조문객이 모였다는 것이다.

생전장의 주인공은 남자는 검은 정장 대신 평상복, 여자는 화려한 꽃무늬 옷을 입고 오라고 당부했으며 조의금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당연히 장례식 분위기는 무겁지 않고 오히려 연회장 같았다는 것이다.

런던올림픽 이대훈 선수의 묘비명이 화두가 됐던 모임이 끝나갈 무렵, 여류화가는 캐리커처를 그려 줄 테니 활짝 웃는 사진 2매씩을 메일로 보내라고 했다.

캐리커처가 마음에 들면 영정사진 대신 그것을 쓰겠노라고 한 사람이 필자를 포함해서 여럿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우물쭈물하지 말자고 눈빛으로 말했다. /설희관 언론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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