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촬영? 촬영해야지.”
유미에게 전화가 걸려 오자 박 감독은 편집기사에게 조용히하란 손짓부터 했다.
“빨리 촬영 끝내서 우리 유미 밀린 출연료 줘야 하는데 말야.”

편집실에서 뭔가 꿍꿍이를 벌이고 있던 박 감독은 유미에게 자신은 지금 투자자를 만나러 밖에 나와 있다고 했다.
“어디 돈 나올 구멍 좀 없나? 이 작품 완성만 돼 봐! 내가 정말 돈 꽂은 사람한테 열 배 백 배로 갚아 준다니까.”

박 감독은 알고 있었다. 요사이 유미에게 뭔가 변화가 생겼으며 조만간 자신을 떠날 것이란 것을.
박 감독은 전화를 끊으며 장담하듯 편집기사에게 말했다.
“두고 봐. 유미 이 년, 돈 꼽게 되어 있어.”
그러면서 낄낄거리며 웃었는데 그 웃음은 마치 세상에 나보다 더 야비한 놈 있으면 나와 보라는 것처럼 들렸다.

마술사가 손가락을 튕기자 거짓말처럼 비둘기가 나타났다.
“어때? 죽이지, 형.”
마술사가 으스댔으나 우나는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럼 나보고 비둘기를 소매에 넣고 동물원까지 가란 말이야?”

“여자 꼬시는데 그 정도는 해야지.”
“거기 가면 독수리도 있고, 타조도 있는데 비둘기가 눈에 들어오겠냐?”

“그럼 모자에서 토끼를 한 번 꺼내 볼까?”
“너 애인 없지?”
“응.”
“니가 그래서 여자가 없는 거야.”

초등학교 시절, 소풍 하루 전날 밤이 이렇게 설레었을까? 유미와의 소풍을 몇 시간 앞둔 지금 우나의 가슴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대공원의 하늘은 청명했고 분수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는 부서질 듯 투명했다. 우나와 유미를 기다렸다는 듯 화려한 의상의 고적대가 그들을 반겨 주었다.

행복했다. 그리고 그들은 느꼈다. 지금 이 순간의 이 행복이 그녀가 있기에, 우나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란 것을. 우나나 유미가 혼자 이곳에 왔었다면 푸르른 하늘도, 화려한 고적대도, 이빨을 드러낸 호랑이도 그들에겐 아무 의미도 없이 지나쳐 갔을 것이다. 그들에게 지금 이 순간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그녀가 있기 때문이었고 우나가 있기 때문이다.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던 유미가 우나에게 물었다.
“우나 씨, 우린 어떤 사이에요?”
“예?”
유미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그 질문에 마땅한 말을 찾을 수도 없었다.

“우린 어떤 사이냐구요? 우나 씬 그런 거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유미는 마치 프러포즈를 기다리는 여인같이 설레어 보였다. 우나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고추장과 마요네즈요.”
“예? 고추장과 마요네즈요?”
“고추장과 마요네즈는 언뜻 보기엔 안 어울리는 것 같지만 마른 오징어 찍어 먹을 땐 그거 이상이 없거든요.”

유미는 이런 식으로 말하는 우나가 좋았다. 유미가 우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데 그녀의 얼굴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지려는지 저만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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