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백양사. 시간이 멈춰 선 곳. 스산한 가을 바람이 백양사 쌍계루 앞 연못 벤치에 앉아 있는 우나와 유미를 스치고 지나갔는데, 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백양사의 한 부분이었던 것처럼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앉아만 있을 뿐이었다.

유미는 바랐다. 백양사의 풍경처럼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 버리기를.
“여기 참 좋아요.”

무엇인가 망설이던 우나가 수줍은 듯 말했다. 그리고 짜내듯 용기를 내어 물었다.
“유미 씨 어디 아프죠?”

그 말이 유미의 가슴 한복판에 구멍을 내고 휑하게 지나갔다.
“암은 아니죠?”

계곡을 메워 만들었다는 쌍계루 연못을 바라보며 우나가 농담을 건네듯이 말을 했고 이내 피식 웃었다.
“암이면 또 어때요? 상관없어요. 내가 고쳐주면 되니까.”

우나는 스스로 만족하다는 듯한 얼굴로 유미를 바라보았는데 웬일인지 유미의 가는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유미 씨, 울어요?”

 
우나는 마치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나 모르는 아이처럼 당황했는데, 유미가 그런 우나를 끌어안았다.
“이대로, 그냥 이대로 있어요.”

근대가 박 감독을 발견한 것은 밀린 공과금을 내기 위해 은행을 다녀오는 길에서였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돈이 유미를 거처 박 감독에게 흘러 들어간 것을 알기에 근대는 박 감독을 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사진으로만 보았던 박 감독이 근대의 눈에 딱 걸린 것이다.

박 감독은 통으로 창을 낸 카페 안에서 몸매는 좋으나 천박함을 감추지 못한 어느 여자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쿠엔틴 타란티노 알아? 쿠엔틴 타란티노.”
“공룡… 이예요?”

영화지망생이라는 그 여자는 어이없게도 할리우드의 유명 감독을 공룡이냐고 물었다.
“음- 아니야. 할리우드 감독인데 말이야, 나랑 좀 비슷한 데가 있어.”

박 감독은 비열한 발톱을 숨긴 채 인내심 강한 아빠처럼 대답했다.
“나 왕년에 극장 영화 찍었던 거 알지? 자기는 내가 왜 비디오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해?”

박 감독은 여자가 대답을 하기 전에 말을 이었다.
“찌그러져서? 아니면 오까네 때문에? 아니야. 그건 말이야, 나만의 미학을 완성하기 위해서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

유미에게 말했던 것과 토시 하나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박 감독은 자상한 아빠처럼 말했다.
“어떻게 설명해야 되나? 아! 혹시 유미 알아? 걔 내가 키운 애잖아!”

그런 박 감독을 창밖에서 바라보며 근대가 되뇌었다.
“넌 죽었어,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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