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예! 오늘도 저희 업소를 찾아주신 불륜, 간통 커플님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잠시 후 2부 스테이지엔 밤의 대통령, 밤의 대학교수! 노상서 씨의 무대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니, 정력이 얼마나 좋으면 이름이 노상서야.”

일번지 나이트클럽의 사회자의 멘트는 3년째 똑같다. 하긴, 불륜이 목적인 나이트클럽에서 사회자의 멘트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 업소에 훈아 형이 왔습니다. 훈아 형 아시죠? 나훈아. 훈아 형이  논 지가 오래 돼서 오까네가 딸린다기에 내가 땡겨 왔어. 여러분! 트로트의 살아있는 전설! 트로트의 황태자! 나우나 씨를 소개합니다!”

사회자의 멘트와 맞물려 나훈아의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전주가 흘렀고 마치 나훈아처럼 우나가 무대로 올랐다. 

“간간히 너를 그리워 하지만, 어쩌다 너를 잊기도 하지. 때로는 너를 미워도 하지만, 가끔은 눈시울 젖기도 하지. 어쩌면 지금 어딘가 혼자서 나처럼 저 달을 볼지도 몰라. 초저녁 작게 빛나는 저 별을 나처럼 보면서 울지도 몰라.”

노래를 부르는 우나의 머릿속에 유미와의 지난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포장마차에서 유미와 처음 만난 일이며, 파마 비닐을 쓰고 유미와 다시 만난 일, 옥탑방에서 보낸 그녀와의 하룻밤, 백양사에서 보낸 풍경과도 같은 시간. 유미를 위해 <따블 나훈아>를 녹음했던 것. 그리고 포장마차에서 도망치듯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그녀.

 
그녀는 떠나고 없지만 우나의 머릿속엔 유미와의 모든 일이 새겨진 것처럼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으며, 그녀에 대한 기억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찾아오듯 하루하루 반복될 것이다.

“인연이라는 만남도 있지만 숙명이라는 이별도 있지. 우리의 만남이 인연이었다면 그 인연 또 한번 너였음 좋겠어. 어쩌면 우리 언젠가 또다시 우연을 핑계로 만날지 몰라. 내 삶의 전부를 눈물로 채워도 널 기다리면서 살는지 몰라. 루루루 룰루 룰루루 룰루.”

절정으로 치닫던 노래의 반주가 멈추었다. 이것이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의 하이라이트다. 잠시 뜸을 들이고 마지막 소절을 멋들어지게 부르면 노래가 완성되는 것이다.
우나가 그 마지막을 위해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데, 취객 한 명이 맥주잔 들고 비틀비틀 우나 쪽으로 다가왔다.

“이 새끼 이 거, 가짜야, 가짜!”
그리고는 우나의 얼굴에 맥주를 뿌렸다.
“이 새끼 이 거 다 거짓말이라구.  하! 하! 하! 이 새끼 이거 다 가짜야 가짜!”

취객은 손가락질까지 하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 그 웃음이 끝나자 모든 것이 정지된 듯 정적이 찾아왔다. 반주는 클라이맥스를 위해 잠시 멈춰 있었으며, 술을 뒤집어 쓴 우나도, 취객의 돌발적인 행동에 놀란 사람들도 눈만 동그랗게 뜬 채 우나만을 바라보는데 활시위처럼 팽팽한 긴장이 흘렀다. 그 긴장이 얼마나 흘렀을까? 긴장을 이기지 못하고 누군가가 꼴깍하고 침을 삼켰고 그 소리에 정적이 깨졌다. 그리고 우나가 그 취객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취객은 쓰러져 나뒹굴었고 경악한 사회자, 무희, 관객들이 우나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는데, 노래의 마지막 반주가 흘렀다.

우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노래의 마지막을 완성했다.
“아마 난 평생을, 못 잊을 것 같아··· 너를.”
그리고 우나는 관객을 향해 씩- 웃었다. 허리에 손등을 고이고서, 입술을 깨물고, 마치 나훈아처럼. 

다음 주부턴 관상을 배워 자신의 배우자를 찾아 나선 당돌한 아가씨의 좌충우돌 연애담, <그녀의 남자 고르는 방법>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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