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인생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내가 저번에 그랬지? 꼴에 예쁜 건 알아 가지고 감히 이 몸을 넘보는 인간이 있다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말할 것도 없이 직접 봐봐. 저기 있잖아 저기. 아니, 이 쑤시고 있는 사람 말고 그 옆에 있는 사람. 그래, 그 사람이 김민수 대리인데, 딱 봐도 게으른 남방계처럼 생기지 않았니?

뭐? 남방계가 어떻게 생긴 건지 모른다고?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북방계, 남방계를 따지고 들어가다 보면 한국인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간단히 설명해 볼게.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인류가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동하여 정착한 곳이 한반도인데, 모로 가도 서울만 간다는 속담 들어 봤지?

그 원시인들도 그랬나봐. 어떤 사람들은 아프리카에서 남쪽 바다를 거쳐 한반도로 오게 됐고, 어떤 사람들은 아프리카에서 중앙아시아를 찍고 시베리아를 통해 한반도로 온 거야. 그런데 요즘 같으면 아프리카에서 우리나라까지 비행기 타면 금방 오지만 옛날엔 어디 그랬겠어? 아프리카에서 조금씩, 조금씩 거처를 옮기며 한반도까지 오려면 몇 백 몇 천 년은 걸렸을 것이고, 이동 경로에 따른 환경 적응으로 자연스럽게 얼굴이 변했다 이거지.

 

즉, 중앙아시아를 거쳐 시베리아를 통해 들어온 사람을 북방계라고 하는데, 잘 생각해 봐. 올 때 좀 춥지 않았겠니? 사람이 추운데 오래 살면 어떻게 되냐면, 일단 코가 길어져. 코가 길어야 찬바람이 긴 코를 따라 들어가며 공기를 데우고, 그 따듯한 공기를 우리 몸에 전달해야 무리가 없을 거 아냐. 그런 이유로 사람은 지역적 환경에 따라 생김새가 바뀌는데, 북방계의 특징으론 눈썹이 흐리고, 콧대는 길지만 코끝이 뾰족하며, 쌍꺼풀이 없고, 눈이 작으며, 입술이 얇아.

그럼 남방계는 어떠냐? 눈썹이 진하고, 짧은 코와 콧방울이 커. 그리고 사각 얼굴에 수염과 머리털이 굵어. 내가 김민수 대리를 설명하다 말고 북방계, 남방계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관상이 절대 미신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하고 넘어가기 위해서야. 침대만 과학인 줄 아니? 관상은 더 과학이다 너. 하여튼 난 김민수 대리가 싫어. 요즘이 어떤 시대니? 무한 경쟁 시대잖아.

지금 우리 부서가 왜 이렇게 조용한 줄 알아? 점심시간에 자기개발한다고 영어 배우러 가고 운동하러 가서 한가한 거야. 나만 해도 내 능력으로 안 될 것 같으니까 관상을 배운 거고. 요즘 세상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거 시간문제라니까. 그런데 저 김민수란 인간은 도통 뭘 하려고를 안 해요. 말했지? 난 게으른 남자를 증오한다고.

내가 관상 공부한 건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기 위해서야. 관상 공부까지 한 내가 김민수 대리랑 연결되면 이쪽에 종사하는 분이 얼마나 허탈하겠니? 물론 김민수 대리가 사람은 좋지.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물러 터진 건 어떡하라고. 연결됐다가 누구 속 터져 죽을 일 있니? 내가 관상 공부나 안 했어야 속기라도 하지.

어쨌든 김민수 대리는 절대 아니야. 절대. 네버. 그리고 김민수 대리 옆에서 이 쑤시는 남자 있지. 저 사람이 또 인물이에요. 제갈 병철이라고 김민수 하고 입사 동기인데, 자기가 뭐 제갈공명의 직계 후손이라나? 난 처음에 정말 믿었다니까.

세상에 제갈 성을 가진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어? 제갈공명, 제갈 병철. 진짜 직계 같지 않니? 뭐? 그런 것 같다고? 저 인간하고 삼십 초만 얘기해 봐. 깨도 그냥 깨는 게 아니야. 아주 홀랑 깬다니까. 저번엔 나한테 심각하게 그러는 거야.

은경 씨, 스페인에서 가장 불효막심한 놈 이름이 뭔지 아세요? 그러더니 자기 혼자 “아빠이빨 까부려쑤” 그러더니 혼자 죽겠다고 웃는 거야. 정말 죽이고 싶은 거 있지? 어! 시간이 됐네. 내가 점심시간에 우리 회사 여직원을 상대로 관상 강의를 하는데 한번 들어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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