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인생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그 호프집 화장실 벽이 얇았어. 그래서 저쪽에서 말하는 소리가 이쪽까지 다 들리더라고. 김 대리 농담에 어이가 없어 웃었다고 했잖아. 너도 생각해 봐. 정말 황당하면 말이 아니라 웃음밖에 안 나오잖아. 그런데 김 대리나 제갈 대리는 우리가 재미있어서 웃은 줄 알았던 거야. 진짜 황당한 사람들이지.

여자 화장실에서 화장 고치고 있는데 반대편 남자 화장실에서 자기들끼리 좋아하는 소리가 다 들리더라고. 그러더니 다음 작전은 혼수모어래. 혼수모어? 혼수모어가 뭐냐면 물을 흩뜨려 놓고 고기를 잡는 거라는데, 제갈병철 대리는 그런 희한한 말들을 다 어디서 주워들은 거니? 그럴 땐 정말 제갈 대리 직계 조상이 제갈공명인 것 같기도 하다니까. 하여튼 제갈 대리가 김 대리한테 그러는 거야.

여자는 자고로 물질과 분위기에 약한 법! 탄력받았을 때 막 풀어 버리는 거야! 자리에 돌아와 모른 척 앉아 있으니까 김 대리가 자리를 옮기자는 거 있지? 1차는 내가 샀으니까 2차는 자기들이 사고 싶다고. 너, 양화대교 근처에 있는 강변 카페 아니?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근사한 데 거기 있잖아. 우릴 거기로 데려가더라고. 그것뿐이 줄 아니? 언제 준비했는지 김 대리가 꽃다발을 내밀더라니까.

받았냐고? 얘! 사람이 싫지, 꽃이 밉니? 세상에 꽃다발 싫어할 여자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그런데 재미있는 건 꽃다발 안에 여러 꽃이 섞여 있는 거야. 장미꽃, 국화꽃, 냉이꽃, 안개꽃… 그런 것들이 말이야. 생각을 해 봐. 세상에 이런 꽃다발이 어디 있어? 도대체 조합이 안 되잖아. 그래서 무슨 꽃이 이렇게 여러 가지냐고 물었더니, 약속이나 한 듯 둘이 동시에 그러는 거야.

 

“우리가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하고 말이야. 재미있더라고. 꽃으로 말을 한다? 그래서 그랬지. “하고 싶은 말씀이요? 그런데 무슨 하고 싶은 말씀이 이렇게 많으세요?” 그랬더니 김민수 대리가 한산대첩을 앞둔 이순신처럼 비장한 표정을 짓더니 이런다. “국화의 꽃말은 ‘나는 사랑한다’이고요, 냉이는 ‘나의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린다’ 이고요, 장미도 비슷한 건데요.” 김 대리가 그 말을 하며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목소리가 다 덜덜 떨리더라고.

사람이 다르게 보이데. 난 김 대리가 그런 면이 있는 줄은 몰랐어. 그런데 왜 옥이가 김 대리 좋아하잖아. 옥이도 감동을 받은 눈치더라고. “그럼, 안개꽃은요? 여기 이 꽃다발에 안개꽃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김민수 대리가 “그건, 서비스인데요.” 옥이는 안개꽃 꽃말이 서비스 인줄 알았나 봐. 자기를 희생하는 서비스 뭐 그런 거 말이야. 김 대리가 그런 게 아니라, 꽃을 많이 사서 꽃집 아줌마가 서비스로 준 거라니까. 옥이는 그제야 눈치를 채고 얼굴 빨개진 거 있지.

그런데 그때, 제갈병철 대리도 옥이한테 꽃다발을 내민 거야. 평소엔 제갈병철 대리라면 질색을 하던 애가 꽃다발은 또 받더라고. 그런데 그 꽃다발도 꽃 종류가 엄청 많더라고. 제갈 대리는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이러는 거야. “네모필라는 불 같은 사랑이고요, 튤립은 사랑의 고백입니다.” 네가 그때 제갈병철 대리 얼굴을 봤었어야 돼. 그 멘트를 날리고 옥이가 마치 자기 여자라도 된 것처럼 희희낙락하다 한방 먹었잖아.

왜는 왜야, 옥이 때문이지. 옥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는 거야. “튤립도 튤립 나름이죠! 여기 이 흰 튤립의 꽃말은 지워져 가는 사랑인 것도 몰라요!” 웃기지 않니? 그런 것 가지고 발끈 할 건 또 뭐 있어? 그때 난 눈치 챘다니까. 옥이가 재갈 대리를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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