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인생

성주현  글      방상호  그림

정말 어이없는 게 뭔지 아니? 손자병법의 36계 중 제28계인 상옥추제 작전을 썼다고 해서 난 정말 대단한 뭔가가 있을 줄 알았어. 당연한 거 아니니? 제갈병철 대리는 입만 열면 자기가 제갈공명의 직계 후손이라고 떠들고 다녔다니까. 제갈공명이 어디 보통 사람이야?

그런데 상옥추제의 내용이란 게 헛소문을 퍼뜨리는 거였어. 내가 사귀는 사람이 있고 곧 결혼한다고 말이야. 자기들 딴에는 그 소문이 재벌 2세의 귀에 들어가길 바랐던 모양인데, 세상일이란 게 어디 뜻대로 되니? 소문이 돌고 돌아서 내가 곧 재벌 2세하고 결혼하고, 김민수 대리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었다고 소문이 와전된 거야.

 
그 인간들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니까. 제갈공명이 자기 후손 중에 제갈병철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야. 하여튼 나로선 오히려 앓던 이 빠진 것 같이 된 건데, 이 인간들이 끝가지 포기를 안 하더라고. 내가 그 재벌 2세랑 만날 때마다 졸졸 쫓아다니는 거 있지? 하루는 내가 그 재벌 2세랑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그 재벌 2세 하고 내 사이에 진도가 좀 나가서 그런지 집 앞에서 키스를 하려고 하더라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걸 받아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릿속에서 오만 번쯤 생각이 바뀌었던 것 같아. 자기가 아무리 재벌 2세라도 쉽게 받아 줬다가 싼 여자로 오해를 살 수 있는 일이잖아. 그렇다고 안 받아 주면 그 사람 입장에선 무안할 수도 있고.

하여튼 그 사람이 입술이 내게 다가오는 그 짧은 순간에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다 결국 튕기기로 했어. 그리고 그랬지. “약속이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그 재벌 2세가 그러는 거야. “약속… 이라뇨?” 내가 아무리 좋은 남자를 고르려고 관상을 공부했고 그래서 그 재벌 2세를 만난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사람이 먼저 아니겠어? 그래서 난 내가 생각하는 결혼관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는데, 그 재벌 2세에게 전화가 온 거야. 갑자기 회의가 소집돼서 그러니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하면서 가더라고. 돌아가는 재벌 2세를 보고 있자니 그냥 키스를 받아 줄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어떻게 하겠어. 버스는 떠났는데.

그래서 그냥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누가 날 부르더라고. 그래! 김민수 대리가 술이 이만큼 취해서 날 부른 거였어. 그래서 내가 우리 집은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자긴 나에 대한 거라면 다 알고 있다는 거야. 기가 막히잖아. 그래서 내가 나에 대해 뭘 다 아냐고 물으니, 이러더라. “그건 제가 은경 씨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까 그 남자가 사기꾼이라는 겁니다!” 사기꾼? 이건 웬 또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 그래서 내가 그랬지. “사기꾼이라고요? 누가요?” 그랬더니, 술이 잔뜩 취해서 나한테 이러는 거야. “누군 누굽니까! 아까 그 놈이지. 그 놈이 지금 자금 사정이 안 좋으니 돈 좀 있으면 좀 빌려 달라고 안합니까?”

김민수 대리가 뭔가 잘못 안 것 같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설명을 해 주는데 대뜸 이러는 거 있지. “재벌 2세가 렌터카 타고 다닙니까!” 엥? 이건 또 무슨 소리? 그 사람이 외제차를 타고 다녔는데 자기가 자세히 보니 번호판이 ‘허’자라는 거야. 난 그때 처음 알았다니까. ‘허’자 달린 번호판은 렌터카라며? 하여튼 난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그래도 분명한 건 내 관상이 절대 틀릴 리가 없다는 거야. 그래서 그랬지. 그 사람이 사기꾼이면 김민수 대리하고 결혼을 하겠다고. 왜 그런 말을 했냐고? 난, 확신이 있었거든.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관상은 거짓말을 안 한다는 확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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