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감상(11)

령월래화사 嶺月來花社
산옹기정의 山翁起整衣
중래유호객 重來有好客
차막엄시비 且莫掩柴扉

꽃마을 언덕 위로 달 떠오를 때
산골 노인 일어나 옷을 여미네
또다시 찾아올 귀한 손님 계시니
아직은 사립문을 닫지 말고 있어야지

시인이 사는 곳은 꽃 피는 산골입니다. 여간해선 찾아오는 이 없는 산중이니, 아침저녁으로 사립문을 열고 닫는 것은 그저 하루를 시작하고 정리하는 일상적인 움직임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날은 달밤에 찾아오기로 한 손님이 있어 옷을 챙겨 입고 사립문을 열어둔 채 그를 기다립니다. 꽃이 핀 산골의 밤 풍경을 혼자 누리기엔 아까웠는데, 좋은 벗이 찾아온다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문밖을 내다봅니다. 친구는 지금 산속 어디쯤을 달빛 아래 걸어오고 있을 것입니다.

꽃향기가 가득한 산골의 밤을 느끼기에는 방 안 보다는 꽃이 핀 한가운데 자리하는 게 좋았을 것입니다. 달밤에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꽃향기를 맡으면서 실눈이 되어 마주 보고 웃었겠지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지나간 이런저런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글을 읽다 느낀 점을 주고받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밤은 깊어지고 옷은 이슬에 젖어 축축해졌지만, 그것이 오래간만에 만나 대화하는 꽃자리를 파할 만한 이유는 못 됩니다.

이때 시인은 감흥에 젖어 말로 하기 어려운 마음을 시를 지어 고백합니다. 친구가 오지 않아 사립문도 걸지 않고 기다렸노라고. 이슬에 옷이 젖어도 함께하니 즐겁기만 하다고. 짧은 시간 함께한 후 내일이면 떠난다는 생각을 하니 무척 허전하다고.

꽃이 핀 자리, 달 뜨는 시각을 잡아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시를 주고받던 옛 풍경이 멋스럽습니다. 그 시절엔 자연스럽던 풍경들이 다 어디로 가고 없는 것일까요?      <출처:한국고전번역원 한시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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