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잦은 대형화재 왜?

1:29:300의 법칙이 있다. 바로 하인리히 법칙이다. 이 법칙은 대형 사고가 한번 터지기 전에는 300번의 경미한 사고와 29번의 제법 큰 사고가 앞서 발생하는 등 예고성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의미의 법칙이다. 이처럼 대형 사고에는 징후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지만, 화재의 경우 이를 감지하고 사전에 방지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지난해 11월30일 발생한 서문시장 화재로 폐허가 된 4지구 상가건물 모습.

대구 서문시장 화재도 수년간 대형 화재의 징후가 있었지만 결국 예방하지 못했다. 점포 679곳을 잿더미로 만든 이번 서문시장 4지구 화재는 영락없이 2005년 2지구 화재의 재판이다. 초기진압 실패는 물론 값싼 드라이비트와 샌드위치 패널 등 스티로폼류 마감재들의 사용으로 급속도로 불이 번진 양상까지 똑 닮았다. 이 외에도 스티로폼, 우레탄, 나일론 등 싸다는 이유로 사용돼 온 가연성 마감재들은 화재를 단시간에 대형 화재로 키웠다. 2지구의 화재가 난지 11년이 지났지만 건축물 안전성과 화재에 대한 대처 등은 변한 게 없었던 셈이다.

◇반복되는 대형화재 원인은 ‘값싼 자재’

건설·건축기술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대형화재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다양한 원인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은 단연 값싼 자재다. 가연성 마감재와 샌드위치 패널의 위험성은 서문시장 외에도 의정부 아파트 화재 등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해 지속적으로 지적돼 왔다. 하지만 값이 싸고 설치가 간단하다는 이유로 계속 사용돼 오고 있다.

샌드위치 패널과 가연성 마감재는 재래시장은 물론 학교, 공공주택, 공장, 병원 등 다수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물에 주로 사용되고 있어 더욱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약 1000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 이번 서문시장 사례만 봐도 EPS(발포폴리스티렌) 샌드위치 패널이 점포마다 지붕 가림막으로 이어져 있었고 외벽 및 실내 칸막이로도 사용되고 있었다.

다른 재래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전통시장에서는 샌드위치 패널 및 값싼 가연성 마감재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단기간에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이같은 이유로 1960년대 3차례 발생한 대형화재를 시작으로 재래시장의 크고 작은 화재는 끊이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국토교통부의 ‘샌드위치 패널 사용 교육시설 해소계획’ 자료에 따르면 국내 초·중·고등학교 및 국·공립대학 등 교육시설 10군데 중 1곳 꼴로 샌드위치 패널이 설치돼 있다. 7만여개의 교육시설 중 ‘샌드위치 패널’을 사용한 시설물이 총 7645개소에 달하는 것이다. 더욱이 해당 시설물들은 많은 숫자의 학생들이 이용하는 급식소, 체육관 등이 대부분인 것으로 조사돼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교육부는 현재 2026년까지 6000억원가량을 투입해 순차적으로 샌드위치 패널을 해소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10년이란 긴 시간이 필요하고, 이미 노후화된 건물도 많아 다수의 학생들이 화재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주거용 건축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015년 화재통계 분석 자료를 살펴보면 주택에서 발생한 화재가 전체의 26.0%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또 최근 단열이나 방음 등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드라이비트류 외부 단열재의 사용이 늘어나 화재에 취약한 주거용 건축물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어 더욱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2015년 발생해 130여명의 인명피해를 발생시킨 의정부 아파트 화재사고를 보면 불길이 외부 단열재를 타고 순식간에 확산됐다. 당시 화재사건을 계기로 방재기준이 대폭 강화됐지만 건축법 개정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들은 여전히 위험 요소로 도심 곳곳에 남아 있다.

◇대책은 재건축?… 철저한 사전 점검은 필수

◇2015년 발생한 의정부 아파트 화재.

지난해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개정 건축법 시행령에 따르면 외벽에 불연·준불연 마감재를 의무 사용해야 하는 건축물이 30층 이상에서 6층 이상으로 확대됐다. 건축마감재는 화재성능에 따라 불연재료(난연1급), 준불연재료(난연2급), 난연재료(난연3급), 가연성 재료(등급외) 등 크게 4가지로 분류된다.

기존에 가장 널리 쓰여 온 스티로폼, 우레탄, 나일론 등 마감재들은 가연성 재료로 불에 타는 성질을 갖고 있어 화재에 매우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지난해 개정을 통해 불연·준불연 마감재 사용 의무 대상 건축물의 대상이 대폭 확대된 것이다.

문제는 개정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들이다. 도심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재래시장, 학교, 공공주택 등 건축물들은 대부분 가연성 마감재를 품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서문시장 2지구의 화재 사례를 보면 재건축 후 재입주까지 7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화재가 난 후 재건축까지는 더 많은 재정과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이에 관련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에서 하루라도 빨리 화재 위험이 높은 국내 건축물 전반에 대한 방재상황 점검과 완벽한 화재방지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건설업계 전반에서도 노후건축물만 재건축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화재 위험이 높은 건축물들도 재건축 대상으로 보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건축법이 강화되기 전에 지어진 재래시장, 학교, 공장, 병원 등 다수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물 중 가연성 마감재 및 샌드위치 패널이 사용돼 대형화재를 발생시킬 수 있는 건물들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화재의 경우는 재난재해와 달리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사고가 대부분”이라며 “화재에 취약한 건축물들에 대한 조사를 하루속히 진행해 재건축을 하든, 보수를 하든 국민 안전을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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