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 32주년 특집 - 모듈러 건축

2013년 서울 청담동의 ‘청담 뮤토’, 2014년 서울 공릉동의 공공기숙사와 울산 외솔초등학교, 2017년 서울 가양동의 ‘라이품’ 행복주택, 2018년 평창올림픽 미디어레지던스와 조직위원회 사무소, 최근 제작에 들어간 충남 천안 두정동 모듈러 실증단지. 이들 건축물들은 모두 모듈러 건축 시스템이 적용됐다.

모듈러 건축이란 ‘유닛 모듈’이라 불리는 구조체를 공장에서 제작해 이를 현장에 운반한 후 단순 조립하는 방식을 말한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구조체는 각종 내장재와 기계설비, 전기배선 등까지 미리 포함한 상태를 말하고, 일정기간 사용 후엔 해체해 다른 곳에서 재사용이 가능하다.

모듈러 건축은 공장에서 사전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한다는 개념에서 스틸하우스, PC주택 등과 유사하지만 프리패브(Prefab) 비율(공장에서의 시공비율)에서 차이를 보인다. 단순히 골조 방식을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 전체 건축물의 60~80%를 사전제작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모듈 제작공장에서 풀옵션 원룸을 만들어 내는 수준이다.

현재 인터넷 쇼핑에서도 구매가 가능한 모듈형 목조주택과 비교하면 주로 철골조를 사용한다는 차이가 있다. 철골조 방식이기 때문에 건축물이 비교적 견고하고 더 높은 층수의 건축물로 사용 폭을 넓혀갈 가능성도 있다. 다만, 직접공사비가 비싸지는 단점도 안고 있다.

현재 국내에 선보인 모듈러 건축물들은 대부분 기숙사, 다가구 형태의 6층 이하 저층 고밀형 주택이거나 학교, 군부대, 오피스 등 공공건축물이다. 건설기술연구원은 현재 10층 이상의 중고층 건물에도 적용할 수 있는 모듈러 기술을 연구 중이고, 모듈러 제작업체들은 몇 가지 제도만 바뀐다면 자체 기술로 고층 모듈러를 지을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듈러 강국 일본, 최고 수준의 자동화가 밑바탕=미국이나 일본, 유럽 선진국에서는 모듈러 주택이 전체 주택시장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일본의 모듈러 주택은 1960년대에 시작해 70년대에 이미 공장 자동화를 추진했다. 최근엔 소비자 요구에 맞춰 제작한다는 의미에서 ‘주문주택’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내진성능은 물론이고 신재생‧친환경 성능까지 갖추고 있어 고급 이미지를 입혔다.

토지주택연구원 권석민 책임연구원은 “일본은 층고, 창 규격 등 다양한 타입의 모듈을 제작하고 있다”며 “모듈 생산 공장에 자동차 생산라인과 같은 컨베이어벨트를 적용했을 정도로 자동화 돼 있다”고 말했다.

또한 모듈러 제작의 첫 단계인 철제 프레임 용접은 로봇으로 진행하고, 구조체에 대한 치수와 뒤틀림 정도는 레이저 측정기로 확인한다. 전선이나 배관 등을 넣을 때는 모듈을 통째로 뒤집을 수 있는 설비도 갖추고 있고, 외장재를 붙일 때도 로봇이 들어 올리고 사람이 보조하는 작업 정도만 수행한다.

◇2013년 완공된 항공대학교 생활관. 왼쪽 건물은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했고, 오른쪽은 모듈러 공법을 적용해 신축했다. 모듈러 건축은 ‘조립식 주택’이란 부정적 인식과 달리 일반 건축물과 큰 차이를 찾을 수 없다. (사진제공=(주)유창)

◇정체된 국내 모듈러 시장=국내 모듈러 제작업체들은 “일본의 자동화 시스템 설비는 시장에서의 수요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각 업체들은 모듈러 공장의 연간 생산 가능용량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모듈러 주택이 활성화 돼야 설비투자나 자동화, 제작단가 조정 등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선 모듈러 건축비를 두고 시장과 업체들이 줄다리기를 하는 모양새다. 현재 모듈러 건축비는 RC공법이 적용된 공동주택과 비교해 110~130% 수준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RC 가격에 맞춰 공사비를 낮춰달라고 요구하지만, 업체들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건설산업연구원 임석호 연구위원은 “예를 들어 LH나 SH는 3만호 공급을 계획하고 예산을 책정했는데 모듈러 주택은 2만5000호밖에 못 짓는다고 하니 발주시 고민될 수밖에 없다”면서도 “업체 입장에선 물량이 늘어야 설비투자를 해서 단가를 낮출 가능성이 생기는데, 현재는 물량이 거의 없어 공장 유지도 힘들어 한다”고 설명했다.

2. 충남 천안에 들어설 두정동 실증단지. 건물은 유닛 모듈을 구조체 안에 넣는 인필(In-Fill) 방식과 쌓는 적층 방식이 동시에 적용됐다.(사진제공=금강공업㈜)

금강공업㈜ 장경훈 과장은 “모듈러 주택의 경우 공기단축으로 발생하는 사용이익과 모듈 이축을 통해 재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건축주나 발주처에서 이해하면서도 단순히 건축비로만 비교하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또 포스코A&C 지장훈 과장은 “벽식 아파트는 내화기준이 최장 2시간이지만, 모듈러로 12층이 넘으면 내화 3시간을 견디도록 하고 있다”며 “이 한 시간 의 시공단가 차이가 굉장히 심해 관련 제도의 손질과 경제적인 내화시스템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최근 부동산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면서 정부는 ‘200만 가구 공급’, ‘도심내 주택 공급’을 약속했다. 약속을 현실화하기 위해 모듈러 주택 등 공장생산 현장조립 방식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일 수 있다. 도심지 공사에 적합하고 빠른 시일에 대량 공급이 가능하며, 향후 유지보수‧이축‧리모델링까지 고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택공급 대책과 함께 새로운 건설 패러다임을 적용해 인력부족과 생산성 저하로 어려움을 겪는 건설업계에 새로운 길을 안내해주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