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건설산업 생산체계 혁신이 가져올 변화와 대응전략은?

혁신의 배경
업종 및 업역, 그리고 생산체계 개편은 이미 오래전부터 산업계의 단골 메뉴였다. 제4차 산업혁명과 신기술(예: BIM, 로봇, 빅데이타와 인공지능 등)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국내 건설에 위기감이 높아졌다. 제4차 산업혁명의 본질이 생산성 혁명에 있음을 감지한 정부와 산업계 사이에 혁신을 공감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지속적인 입찰예정가격 하락과 늘어나는 공사원가로 인한 손실을 전가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다단계 하도급이 광범위하게 활용되면서 시민단체와 노동계가 반기를 들었다. 정부와 산업계는 업종과 업역 개편과 생산성 체계 혁신을 통해 고착화된 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로 산업구조 혁신의 길을 택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11월7일 두 번째로 열린 ‘건설산업 생산구조 혁신 노사정 선언식’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왼쪽 세 번째)과 김영윤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장 등 노사정 대표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건설산업혁신위원회 민간위원장인 이복남 서울대 교수(오른쪽 첫 번째)는 4월부터 산업 혁신방안 마련 논의를 이끌었다.

건설 산업 혁신의 핵심
산업구조 개편의 핵심은 4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업역을 수평과 수직 이동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수평 이동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일반과 전문공사업의 칸막이를 제거했다. 1976년부터 수직 생산체계를 고정시켰던 ‘원도급=일반, 하도급=전문’ 체계의 파괴다. 일반과 전문의 원·하도급을 업체가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둘째는 다단계 하도급을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원도급 및 하도급의 직접시공 확대다. 원·하도급 이동은 가능하지만 일단 선택하면 직접시공 원칙을 적용하기로 했다.

셋째는 시장 진입문턱은 낮게, 공사 진입문턱은 높게 하는 조처다. 시장 진입을 위한 사업자등록에 필요한 자본금과 고용인력 등 요건을 완화시켰다. 시장 진입을 원하는 사업가는 작은 노력만으로도 등록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공사 진입, 즉 입찰에 참여하기 위한 조건은 현재보다 훨씬 까다롭게 하는 원칙을 세웠다. 기술에 대한 변별력을 높여 페이퍼컴퍼니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의미다. 역량이 높을수록 일감이 돌아가게 할 가능성을 높이는 조처다.

업종과 업역은 단순화시켰지만 공사실적 정보는 지금의 면허수보다 훨씬 세분화시켜 발주자가 입찰자의 전문화와 실적을 판별할 수 있도록 했다. 전문화로 가기 위해서는 업체 스스로 역량을 강화시킬 것을 주문한 것이다. 시장 진입의 문턱은 낮추면서도 공사 진입문턱을 높인 이유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문성 강화가 필수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넷째는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도 간과하는 부문이다. 수평 및 수직 이동을 용이하게 했고 직접 혹은 직영시공을 확대한다는 의미에는 기업에 성장 사다리를 만들어 주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일 잘하는 기업에게 일감이 돌아가게 사업 진입 문턱을 높였다는 점과 업역과 업종에 대한 실적을 세분화시키고 양과 질을 동시에 평가해 정보를 축적하게 되면 ‘대마불패(大馬不敗)’에서 ‘강자필승(强者必勝)’으로 변한다. 발주자에게 재량권과 책임이 강화되면 발주자의 선택이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가 명확해진다. 사다리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혁신방안 저변에 깔려 있다.

예상되는 변화
산업구조 혁신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하면 산업체와 계약 혹은 생산 구조에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초기에는 회의적 시각이나 방관하는 현상이 나타나겠지만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움직임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혁신의 배경 및 목적이 생산성을 높여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데 있기 때문에 역량이 높은 산업체에게 일감이 돌아가게 되어 있다.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산업체일수록 규모와 관계없이 성장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타날 변화를 업체의 전문화와 계약 및 역할로 나눠 예측해 본다.

먼저 업체의 전문성을 강화시키는 움직임이 나타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시공기획과 설계, 공종 간 조정 및 공사 관리, 즉 건설공사 프로세스 기술력을 강화시켜 소프트웨어 기반 전문기업으로 가게 될 것이다. 모든 걸 잘하려는 것보다 교통이나 수자원, 플랜트와 건축 등 상품군을 선택해 엔지니어링과 기술디자인 역량을 전문화시키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견 규모의 기업은 교량이나 터널, 업무용빌딩이나 주거용 건축 등 상품군별 시공기획 및 관리, 공법설계 등의 역량을 전문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직접시공은 하겠지만 핵심 공종 혹은 역할을 제외하면 대부분 직영 시공하는 프로세스와 직접생산 기술력을 강화시키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의 중견 규모 이하 그룹은 생산기술력을 강화시켜 대공종(예, 철근구조물, 철골구조물, 배관 및 기계설치 등) 전문업체로 역량을 강화하는 그룹이 나타나게 된다. 전통적 전문공사업이 이에 해당된다. 인력과 장비를 상시 보유하고 자재를 자체 조직에서 조달 역량을 갖출 수 있는 기업은 건설공사 물량이 가변적이고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극소수에 그친다. 대부분의 기업은 특정한 상품군이나 대공종 물량을 상시 확보하기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수주 물량에 따라 공사 계약단위로 고용하거나 임대하고 필요한 자재를 공급받는 방식인 직영시공 방식을 택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력과 장비, 그리고 자재 조달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업체가 새롭게 등장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공사는 적게는 500개, 많게는 2025개 공종 혹은 자재가 동원된다. 이 많은 공종을 직접 시공할 수 있는 단일 기업을 찾기 어렵다. 핵심 인력과 공종을 제외하면 공사계약단위로 조달업무를 위탁하되 목적물의 완성과 품질 확보책임은 원도급 계약자가 지는 방식이 보편적이다. 공종이 많은 공사일수록 전문인력과 장비, 자재조달 등을 컨설팅해주는 전문업체가 등장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이나 영국 등에 흔히 투입되는 컨설팅 비즈니스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구조 개편 시 현재보다 생산 및 계약형태가 훨씬 다양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직접 혹은 직영시공이 보편화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지식기반 기술 전문기업과 생산기술 전문공사업과의 연합 혹은 컨소시엄이 다양하게 나타나게 된다. 직영시공 역량을 충분히 갖춘 기업이라면 전통적인 원·하도급 계약 형태를 고수하는 집단이 될 것이지만 50억원 미만 소규모 공사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의 주계약자 공동도급과 유사한 형태의 공동도급도 빠른 속도로 확산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직접시공이 확대될수록 관리와 생산에 대한 역할을 분담하는 공사건별 공동도급 형태가 보편화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국내 건설공사에서 대부분의 컨소시엄 계약이 공동이행보다 분할시공형태지만 구조 개편으로 산업체별 전문화가 이뤄지게 되면 분할책임시공보다 공동이행, 즉 역할 분담형태의 컨소시엄으로 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사의 규모가 클수록 직접시공 조건이 강화되면 단일 컨소시엄에서 공사기획 및 관리와 상품별 및 대공종별 시공생산 역할을 분담하는 계약자 CM형 생산구조가 또 다른 형태로 자리 잡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사 규모가 대형으로 발주되는 민간공사나 민간투자사업에서 이런 방식의 컨소시엄이 보편화 될 것으로 보인다.

직접 혹은 직영시공임을 확인하고 불법적 다단계 하도급을 상시 모니터링 하는 시스템이 구축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음성적인 불법거래는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게 될 것이 확실하다. 근로자 실명제(근로자 카드)와 함께 작업실명제를 도입할 경우 불법적인 다단계 하도급을 현실적으로 숨기기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어떤 준비와 대응이 필요한가
기업이든 사람이든 선택의 자유는 주어져 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것도 선택이다. 산업구조 혁신은 기업이나 개인이 좌우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닌 외생변수다. GE에서 20년간 대표직을 맡았던 잭 웰치는 외부 변화를 거부하면 외생변수가 자신을 변화시키게 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산업구조 혁신은 일회성에 그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건설업을 유지하는 기업은 정책과 제도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생존하고 성장하자는 목표를 세웠다면 변화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준비하고 대응해 가야 한다. 쉽고 어려움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전문건설공사 업체에게 필요한 준비와 대응 전략에 한정해 서술해 본다.

생산체계와 역할의 변화흐름을 읽었다면 기업이 현재 어떤 포지션에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무엇을 잘 해왔고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그리고 국내 산업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했다면 성장의 사다리를 어디에서부터 올라가기 시작 할 것인지, 그리고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떤 역량을 필요로 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생산체계에서 업체는 업역과 업종 간 이동, 즉 수평이동과 원·하도급 구조에서 상·하 수직이동이 가능하다. 성장 사다리는 ‘개별 공종→대 공종→개별 상품→상품그룹→복합상품’ 등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사업장 무대도 ‘마을→광역→전국→해외’로 확대해 갈 수 있다.

어떤 생산체계에서도 직접 혹은 직영시공은 피할 수 없다. 직접시공이나 직영시공은 기업이 주력하는 공종이나 상품군에서 필요로 하는 숙련공과 기술자를 필수적으로 고용해야 한다. 주당 52시간 근로제, 적정임금 지급, 임금직불제, 근로자카드제 도입 등은 지금까지 건(件)별 혹은 일식관리에서 정밀하고 세밀한 관리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시공계획 및 관리, 문서와 통신관리 역량을 반드시 높여야 한다.

인지상정이나 관례나 관습에 의존해 공사를 수행하는 방식은 현장에서 사라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계약관리의 중요성이 그만큼 커지고 또 도면과 시방서에 대한 해독력을 높여야 한다.

맺음말
업역 파괴와 업종 통합, 직접시공 확대 등 건설 산업 혁신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완벽한 준비나 완벽한 출발은 없다. 1976년에 제정됐던 전문공사업과 원·하도급제가 변화 흐름에 따라 유효기간이 지났다. 정책과 제도의 잘못이 아닌 외생변수에 의해 혁신되고 있다. 지금의 혁신방안도 수십 년 후에 또 다른 변화를 겪게 될 수도 있다. 시장과 산업, 그리고 기술 환경이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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