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전략을 수립할 때 한때 ‘백년대계’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왠지 낯설다. 100년 앞을 내다보기에 너무 변화가 빠르고 크다.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변화가 빠르고 크다는 걸 인식하면서도 관심은 오늘이고 내일이다. 5년은 고사하고 당장 내일 무슨 돌발 변수가 생길지를 걱정한다.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리적 리스크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유가와 환율, 또 다른 경제 위기 등은 우리에게 미래를 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핵을 둘러싼 국·내외 정치 상황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혼란만 가중시켰다. 미래를 말하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세상이 됐다.

오늘이 어렵다고 내일을 포기할 수는 없다. 포기할 수 없는 내일은 당장의 내일과 가까운 미래, 그리고 먼 미래가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이나 직장을 가진 청년에게 미래 얘기는 남의 얘기로 들린다. 대학에서 학생에게 오늘보다 내일을 보고 미래를 설계하라고 하면 답답한 사람으로 취급당하는 세상이다.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마저 현실 개념 없는 사람으로 내몰린다. 청년은 미래 도전보다 안전한 국가직 공무원 시험에만 도전한다.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기업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현안만 해결하면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처럼 생각한다. 내수 시장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혁신적인 정책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소리도 안 들린다.

7년 전 다보스포럼에서 ‘뉴 노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급변하는 세상을 더 이상 비정상이 아닌 정상으로 받아들이라는 세계 리더들의 주장이다. 세계 제4차 산업혁명이 다보스포럼의 주 의제로 등장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산업혁명과 IT, 금융혁명을 넘어 제4차 산업혁명은 이제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경험하지 못했던 변화는 미래를 과거의 연장선에서 유추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다. 전혀 다른 시각으로 미래를 준비하라는 충고다. 미래를 준비하는 주관부처와 산업계가 중요하게 개선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상당수가 미래를 현안 해결과 연관시켜 보는 습관이 있다. 이 현안들은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국내 건설시장의 고유 문제에 불과하다. 당장의 현안을 해결한다고 해서 밝은 미래나 새로운 미래의 창이 열리지 않는다. 장기 비전과 정책을 목표하면서 현안 해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정책이 아닌 대책에 불과할 뿐이다. 대책은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임시 처방이지만, 정책은 거시적 관점에 더 무게 중심을 두는 차이가 있다. 현안을 해결하는 것도 오늘을 보는 것과 내일을 대비하는 것에 분명 차이가 있다. 

세계적인 미래 학자들이나 컨설팅 연구소들이 내놓는 미래 전망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미래를 과거와 달리 너무 멀리 보지 않는다. 5년 혹은 10년을 주기로 본다. 다국적 전문가들로 구성된 유엔미래포럼에서 ‘유엔미래보고서 2050’ 전망을 내놓기는 했지만 학자나 연구그룹과는 차이가 크다. 

둘째는 미래의 변화와 속도에 관한 시각이다. 변화의 크기보다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이고 속도보다 파급 영향이 훨씬 커졌다. 빅뱅으로 불리는 우주 대충돌과 같은 일시적 변화보다 작은 것이 세상을 송두리째 바꾸는 이른 바 ‘빙산’이론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작지만 보이지 않는 파급 영향이 수천배에 이르는 차이다. 

셋째는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보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목표부터 먼저 정하라는 충고다. 예측이 어려운 변화에 대응하는 목표보다 목표를 중심에 두고 대응해 가는 게 훨씬 좋다는 충고다. 미래를 만들어 가라는 조언이다.

노련한 운전자는 바로 앞차보다 몇 차 앞을 주시한다.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봐야 안전 운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모든 차량은 목적지가 분명하다. 건설기업이나 개인의 목표와 보는 눈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목표 없는 내일은 없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과 실천과제를 도출한다. 전략과 실천과제에 맞춰 현안을 해결하는 게 순리다. 속도보다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게 중요하다. 건설의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도 있다. 건설을 앞세우기보다 국토인프라의 기능과 역할을 앞세우는 게 설득력이 있다.

미국은 인프라를 국가 중추로, 영국은 국민경제를 중추로 정립했다. 우리도 국민경제의 중추나 대들보를 내세워야 한다. 중추나 대들보를 나라 경제와 국민의 재산을 지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과제를 도출해 국민들에게 내놓을 책임이 있다. 건설을 위한 건설이 아닌 국민과 국가를 위한 인프라 성능과 안전 확보 명분이 훨씬 설득력이 강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빠질 대로 나빠진 건설 이미지를 혁신시킬 수 있는 노력을 훨씬 강화시켜야 한다. 과감한 목소리도 적극적으로 내야 한다. 사실 왜곡을 방치하는 것은 스스로의 위상을 저하시키는 데 동참 혹은 동의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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