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이 ‘90년생이 온다’라는 제목의 책을 선물했다. 책을 건네면서 경고(?)를 덧붙였다. 학생에게 더 이상 꼰대 강의를 하지 말라는 경고다. 지인은 아직 50대지만 전공과목을 강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진로 설계에 도움이 되는 세상의 현실을 말해주고 질의응답 중심으로 강의한다고 한다. 40대 초반의 대학교수인 또 다른 지인은 학생에게 교과서에 나타나 있지 않은 산업과 시장에 초점을 맞춘 교재를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현직 교수지만 나이 차이가 20년임에도 불구, 필자 눈에 비친 공통점은 지식의 무게감이었다. 눈에 비친 학생과 교수의 신분 차이와 다르게 내적으로 교수와 학생이 가진 지식에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애가 2학년 동생에게 어린 것이 뭘 모른다고 하자 동생이 곧 바로 옛날 얘기만 한다고 반박한다. 2학년 눈에 4학년이 꼰대로 보인 게 아닐까? 사전적 의미의 꼰대는 어른을 비하하는 속어다. 현실에서 나이 든 사람의 고집이나 낡은 지식을 종종 꼰대로 비하한다. 나이 차이로 인한 세대 간 갈등은 인류 역사와 함께 했다. 2000년전 로마시대 원로원 회의에서도 청년 세대의 경박함을 곧잘 한탄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후세대, X세대, Y세대, 밀레니얼세대 등 연대별 세대를 가르는 용어가 범용된다. 386세대가 한 때 한국을 대표하는 세대로 포장되기도 했다. 중국은 10년 단위로 세대를 구분한다고 한다.

꼰대는 분명 속어다. 한 때 필자 주변에서 꼰대 탈출(?)을 시도하기 위해 약어 혹은 속어 사전을 만들어가면서 노력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에 살고 있다. 정보와 통신 기술이 변변하지 못했던 시대에는 오직 책만이 정보를 얻고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길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읽은 책이 많아져 나이 차이가 곧 지식 차이와 같았다. 회사에서 직급이 올라갈수록 보고되는 정보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피라미드 조직의 꼭대기에 있을수록 정보와 지식의 독점권이 보장됐었다. 수집된 정보와 지식을 무기로 조직과 인력을 장악하는 것이 힘과 권위의 원천이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인터넷이 범용화 되면서 정보와 지식의 독과점 체계는 무너졌다. 보고를 통해서 정보를 얻기보다 접속을 통해서 얻었고, 책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양과 속도보다 검색을 통해 얻는 것이 훨씬 쉽고 다양해졌다. 정보와 지식수준이 수평 시대로 변했다. 정보와 지식 보유량에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직급이 높다거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대접받기를 강요하면 자연스럽게 꼰대 소리를 듣지 않겠는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시간 차이는 나이 차이다. 시간을 중지시키거나 되돌릴 수 없듯이 세월도 되돌릴 수 없다. 꼰대 탈출 시도는 불가능하다. 사회에서 ‘모르면 쉰 세대, 알면 신세대’로 통용되지만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애 꼰대가 어른 꼰대로 변한다. 정보와 지식의 수평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인류 역사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지혜다. 나이와 세대를 거스를 수 없는 진실이 지혜의 크기와 깊이다. 나이가 들수록 지혜 축적을 통해 혜안이 높아진다. 지식 축적에는 나이가 없지만 지혜 축적은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지혜를 통해 현명한 판단이 나온다. 똑똑하지만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하는 사람을 흔히 ‘헛똑똑이’라 부른다. 지식에는 나이가 없지만 지혜에는 분명 나이가 있다. 부족한 지식이나 정보는 검색을 통해 채울 수 있다. 하지만 얻은 정보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은 지식보다 지혜의 힘이다.

우리 사회는 똑똑한 사람보다 현명한 사람, 지식이 충만한 사람보다 슬기로운 지혜로 무장한 사람을 찾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보량이 많을수록 세상을 지배하는 힘이 컸었다. 정보가 곧 지식이었고 힘이었다. 현재는 정보와 지식보다 이를 활용하는 힘, 즉 지능과 지혜가 지배하는 세상으로 변했다. 정보의 양보다 이를 분석하고 활용하는 기술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세상이다. 정보(information)시대에서 지식(intelligence)시대로 넘어갔다. 인공지능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지만 인간이 가진 고유한 지혜의 힘은 당분간 넘을 수 없다. 기술 격차보다 지혜 격차, 개인 격차보다 시스템 격차가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세상이다.

울타리 안 경쟁에서 울타리 밖 경쟁으로 무대가 확대된 지금 한국건설이 가야 할 길은 정보와 지식을 심층 분석하는 지식과 지혜 무기를 강화해야 한다. 높이 쌓아놓은 책보다 현명한 인재가 많을수록 국제경쟁력이 높아지는 세상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길러지기보다 길러낸다. 똑똑한 사람은 언제라도 충원이 가능하지만 지식인 혹은 현자는 수요자가 길러낼 수밖에 없다. 지금은 기술보다 인재 전쟁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합협력중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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