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분기 말 기준 1500조원이었던 한국의 총통화(M2)가 10년 뒤인 지난해 3분기 말 2800조원까지 급증했다. 그만큼 시중에 풀린 돈이 늘어났다는 말이다.

통화량은 늘었는데 이 돈들이 도는  속도는 더디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세계은행 통계를 기초로 분석 데이터가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6개국의 2018년 총통화 유통속도 하락률을 산출한 결과를 보면, 한국의 유통속도 하락률이 16개국 중 1위다. 우리나라의 ‘돈맥경화’ 양상이 OECD 16개국 중 유독 두드러졌음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성장률과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높을수록 돈의 회전속도가 빨라진다. 반대로 저성장 및 저물가는 돈의 회전속도를 늦춘다.

더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 경제 상황이 보일 것이다. OECD 가입국 중 꼴찌다.

돌발 변수까지 생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은 한국의 올해 수출과 투자 증가율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 여파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진다는 전망이 나왔다. 투자 관련 전망도 하향 조정돼, 블룸버그가 집계한 한국의 올해 투자 증가율 전망치는 1월 2.0%에서 0.1%포인트 낮은 1.9%로 내려앉았다.

부랴부랴 정부가 신종 코로나 대응책을 마련 중이다. 각종 대책에 필요한 재원은 예비비 3조4000억원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지만, 이번 사태가 심각해질 경우 추가경정예산(추경) 카드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예비비나 추경이나 한낱 미봉책에 그칠 뿐이다.

위기를 맞은 정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져야 한다. 이번 사태가 ‘반 시장적’으로 베베 꼬인 현 정부의 경제 인식을 바르게 풀어낼 계기가 되면 좋겠다.

“부동산에 기대어 경기를 부양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정부다. 정권 초 이 선언 때부터 너무 섣부르단 걱정이 들었다.

경제의 부동산 의존도가 매우 높은 한국에서 이를 배제하고 어쩌겠다는 말인지 싶었다. 강제 부양하지 않아도 우리 경제가 알아서 잘 돌아갈 정도도 아닌데 말이다.

12·16 부동산대책 한 달 만에 서울 강남권 집값이 잡혔다고 호들갑이다. 공공연히 강남을 타깃으로 삼은 정부이니만큼 신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최근 수원, 용인, 안양 등 경기 남부 지역의 집값이 뛰는 ‘풍선효과’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다 웬만한 지역 집값이 모두 강남과의 ‘갭’을 메워버릴지도 모르겠다.

주택 시장 규제를 한번에 다 풀어주라는 게 아니다. 보유세 인상처럼 부동산 시장 물을 흐리는 이들을 소위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다잡을 정책은 수도 없이 많다. 더욱 촘촘히 집으로 막대한 차익을 낸 자들의 책임과 부담을 늘리면 된다. 동시에 시중의 부동자금이 생산적인 분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물꼬를 터주는 대책도 필요하다. 과한 대출 규제를 없애고, 투기 의도 없는 선량한 주택 시장 참여자의 거래세를 대폭 완화해주는 등의 출구전략이 그것이다.

돈이 돌아야 경제가 산다. 사람도 몸(경제)에 피(돈)가 돌지 않으면 죽는다. 가뜩이나 지금은 신종 코로나 공포에 성장률 쇼크까지 겹쳐 우리 경제의 숨이 끊어질 상황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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